2018/07/24

학술대회를 자식 대학 입시에 이용하려 한 학부모



어제 오후, 어떤 아주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기 아들이 고3인데 과학철학에 매우 관심이 많다면서 학교신문에 기사를 쓰고자 하니 올해 여름에 열릴 학술대회에 관련된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딱 봐도 내신용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임을 알 수 있었으나 어머니 마음이 오죽하겠나 싶어서, 나는 해당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오늘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자료가 필요하면 미리 요청을 할 것이지 왜 당일에 보내달라는 것인가? 약간 짜증이 났지만 알았다고 하고 곧바로 자료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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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7시 47분, 그 아주머니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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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저희 아들이 확인하여 신문만들기란에 인터뷰란에 소식으로 편집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자확인후 전화주시길 바랍니다. 문의가 있어서요. 보내주신 내용에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가 알 수 없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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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주머니는 어제도 학술대회가 몇 회째냐고 물었다. 학교신문 기사에 학술대회가 몇 회인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 공문에도 학술대회 개최년도만 나오지 회차는 나오지 않고 학회 선생님들도 회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회 단독으로 학술대회를 하기도 하고 다른 학회와 연합 학술대회도 하기 때문에 몇 회인지 구분하기 애매해서 아예 학술대회 회차 자체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자기 아이가 학교 신문에 기사를 써야 하니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대학신문도 아무도 안 보는데 그까짓 고등학교에서 애들끼리 만드는 신문에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 적는 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나를 괴롭히는가? 나는 자료를 찾아본 다음에 연락하겠다고만 하고 연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아침에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나에게 언제 연락하면 되는지 묻는 것도 아니고 나보고 자기한테 전화를 하란다.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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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 지나 아침 9시가 되었다. 기어코 그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머니는 또 학술대회가 몇 회냐고 물었고 나는 자료를 못 찾았으니 자료를 찾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왜 자료가 없는 것이냐, 자료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고, 나는 몇 회인지는 선생님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나중에 자료를 찾으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통화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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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가요 학술대회에 꼭 가고 싶어 하는데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면 좋은데 수요일하고 목요일에 학술대회에 가면 학교에서 결석처리가 되어서요 결석처리가 안 되게 학회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원고를 낸다거나 하는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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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고3 아들이 과학철학에 기울이는 관심의 수준이라는 게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칼럼을 쓰는 것 정도인데, 그런 글을 과학철학 학술대회에 낼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차라리 외교관이 꿈이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그러지 왜 저러나 싶었는데 꾹 참고 간단히 답했다. “원고 접수 기한이 지나서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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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아침밥도 못 먹었고, 아홉 시간 전에 냈어야 하는 기말보고서 기획서를 제출하지 못했고, 한 시간 뒤에 제출해야 하는 발제문도 다 작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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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결석처리가 되면 안 되니까요 명분이 필요하다니까요....”

“원고 접수 기한이 이미 지나서 안 됩니다.”

“그래도 그런 방법을 검토할 수 있잖아요.”

“저한테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연구이사님이 결정하는 건데 원고 접수 기한이 이미 지났어요.”

“그러니까 해달라는 게 아니구요 알아봐 주실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런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라는 건 핑계구요, 전례라는 건 깰 수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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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다 참다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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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학술대회에 발표하는 대학원생도 잘 할까 말까 해요. 그런데 학부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영화보고 글 쓴 거 가지고 학술대회에 원고를 내겠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대학이 중요해도 정도껏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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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듣더니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고 했다.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으나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비속어도 쓰지 않았고 협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주머니의 심장이 벌렁거리겠는가. 얄팍한 수작으로 자식을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속셈이 나에게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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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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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가 그렇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본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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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황당한 것을 물어본다면, 가령, 그 아주머니의 집을 허락도 받지 않고 1년 간 무상으로 임대해도 되는지 묻거나 고3 아들을 원양어선에 팔아도 되는지 묻는다면, 설사 정중하게 묻는다고 해도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화를 낼 것이다. 임대해달라고 하거나 원양어선에 팔겠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지만 물어도 화를 낼 것이다. 그 정도로 상식도 없고 예의도 없는 아주머니였지만, 나는 그런 아주머니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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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의 말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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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들은 이과도 아니고 문과구요 소프트웨어 특기생으로 대학을 가요. 대학 가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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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분 전에 분명히 내신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학술대회가 몇 회인지 빨리 알려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대학에 붙었으면 그까짓 결석처리가 뭐 그리 무서운가. 그리고 꼭 올해 학술대회에 참가해야 하나? 올해는 고등학교를 잘 다니고 내년 학술대회를 보면 안 되나?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이라도 받아서 내년 학술대회는 못 보나? 그런데 정말 시한부라면 학술대회 같은 데는 오지 말고 더 재미있는 것을 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 아주머니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아, 그렇습니까. 제가 오해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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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황당한 일이 신문이나 뉴스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직접 겪을 줄은 몰랐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부에 온갖 짜잔한 것들을 왜 기록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든지 하는 것은 학생의 능력을 보여주니까 기록할 가치가 있고 대학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학생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며 학교에서 무슨 소꿉놀이를 하는지를 고등학교는 왜 기록을 해야 하며 대학은 그딴 것에 왜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까짓 동아리 활동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딴 게 그렇게 중요하면 “운동장 구석에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다오 3회 함” 같은 것은 왜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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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위해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학교 특성화 프로그램 등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학교에서 얼마나 프로그램을 잘 짜고 잘 집행하길래 그런 프로그램들이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돕는다는 건지 궁금하다. 물론, 학생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반-강제로 집행한다면 문제풀이 시간이 줄게 되어 학생들의 노동 강도가 약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공격적 성향도 줄어들 것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프로그램에 스트레스 감소 효과 말고 교육적인 효과가 있기나 한 것인가. 전인적 발달과는 무관하고 말이나 번지르르하게 하고 남 속이는 법이나 몸에 익히는 것은 아닌가. 인공지능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문과 고등학생이 학술대회에 구경 오는 것은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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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수학-과학 점수가 더 높은 학생을 뽑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은데, 실제 대학 입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보니 학부를 갓 졸업한 사람도 입학사정관으로 뽑는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간다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내 후배 중에 교사가 있는데, 어느 대학 입학설명회에 가서 입학사정관으로 나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 후배는 그 입학사정관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녀서 그 사람이 멍청하면서도 사기꾼 기질이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입학사정관이 된 것을 보고 저래도 되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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