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나 개념을 만들면 해당 단어나 개념이 없었을 때보다 나아지는 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령, 특정 집단을 부르기 위한 용어를 고안할 경우, 해당 집단은 특정 집단으로 묶어서 부를 정도로 다른 집단과 차이가 나야 하고, 그러한 차이가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훈구파’나 ‘사림파’로 분류하는 것은 무언가 유의미한 분류인 것 같은데, ‘임진왜란 세대’나 ‘병자호란 세대’ 같은 것으로 분류하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훈구파’나 ‘사림파’ 같은 경우는, 권력 분배나 권력 이동이나 배경세력 등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된다. 반면, 전란을 겪은 백성들을 ‘임진왜란 세대’로 묶든 ‘병자호란 세대’로 묶든, 그걸 세분화해서 ‘정묘호란 세대’와 ‘병자호란 세대’로 구분하든,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늘날 청년들을 무슨 무슨 세대로 나누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어떤 이점이 있는가? 몇 년도부터 몇 년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고유명사처럼 세대명을 붙였을 때의 이점은 무엇일까? 거의 없는 것 같다. 사회과학적 모형의 설명력이 증가하는가? 아니다. 예측력이 증가하는가? 아니다. 기존에 통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통제 가능하게 되는가? 아니다. 그러면 뭐가 좋은가? 굳이 따지면, 크게 두 가지 이점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맞든 틀리든 어떻게든 떠들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방송 작가라면 아무 이야기나 주워온 다음에 MZ세대 같은 소리나 붙이면 그 날 필요한 대본 분량을 대충 때울 수 있다. 정당의 선거 본부라면 출세하고 싶어 안달 난 젊은 사람을 아무나 데려온 다음에 MZ세대 같은 소리나 붙이면 손쉽게 영입 명분을 만들고 언론에 홍보할 수 있다. 기업 홍보팀에서도 광고 문구가 적절하지 않을 때 MZ세대 같은 소리나 붙이면 된다. 언론사에서도 아무거나 막 긁어온 다음에 MZ세대 같은 소리나 붙이면 기사를 뚝딱뚝딱 만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세계나 사회에 대한 아무런 유의미한 견해도 없는 사람도 마치 자기가 시대 흐름을 파악하거나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들어 삶을 만족감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디서 ‘똥꼬’라는 단어를 주워듣고는 아무 데나 똥꼬, 똥꼬 하며 즐거워하는 것과 비슷하다. 언론이든 매체든 아무 말이나 해놓고 MZ세대 같은 소리나 하면 그걸 주워듣고 와서는 주변 사람들과 말도 안 되는 대화를 하면서 “그게 MZ세대랴~” 하면서 좋아하는 것이다. 자기 정신도 모르는 사람들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시대 정신 같은 소리를 읊조리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겠다.
‘X세대’든 ‘Y세대’든 ‘MZ세대’든, 먹고 살려고 가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차피 가치 없는 일 하는 거 쉽게 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단어겠지만, 그 중에서도 ‘MZ세대’는 제일 질이 나쁜 것 같다. 그 이전에 만든 것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구분이었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 구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성의라도 보였는데, ‘MZ세대’는 그런 노력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연예기획사에서 데뷔시켜야 하는 연습생들 몽땅 때려넣어 그룹을 만들고는 ‘고객들 취향이 어떠하든 이 중에 한 명에게 꽂히겠지’ 하는 것처럼, 스무 살 차이나는 사람들을 몽땅 때려묶고는 MZ세대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렇게 때려묶으면 아무 이야기나 해도 20대 초반이든 30대 후반이든 걸려들 테니까 개소리하기는 수월해진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먹히겠는가? 내가 대학원을 같이 다니는 열 살 어린 대학원생한테, 훈계도 아니고 평범한 경험담을 말해도, 그 대학원생은 마치 나를 격동의 현대사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처럼 쳐다보는 판이다. 그런데 20년을 다 때려넣고 “MZ세대요~”라고 하면 그게 정상인가?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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