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9

내가 <청년정의당>에 보낸 의견



<청년정의당>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솔직히 뭘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청년들하고 뭘 하려는 모양이다. 어차피 나는 나이가 서른일곱 살이나 먹었기 때문에 <청년정의당>하고 별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청년정의당>에 제안할 만한 내용이 생각나서 한 가지를 건의했다.

내가 건의한 것은, <청년정의당>에서 대학원생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대학원생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대학사회에서 약자라서? 합당한 대우를 못 받아서? 아니다. 대학원생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 중 일부가 미래에 교수나 기타 전문가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필요하겠지만 전문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은 쉽지 않고 시간과 노력과 비용도 많이 든다. 대학원생들 중 일부는 멀지않은 미래에 교수나 전문가가 될 것이니, 대학원생 때 친해지거나 거리를 좁혀놓으면 이후 교수나 전문가가 되었을 때 섭외할 때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의견을 제시하자 내 의견을 접수한 사람은 “그동안 고민하던 부분이고 의견을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답변했다. 나는 말을 꺼낸 김에 몇 마디를 더 했다.

나는, 혹시라도 대학원생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공대 대학원생 쪽을 뚫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나 금융공학이라든지 원자핵공학 쪽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 분야를 뚫을 수 있다면 다른 분야를 뚫는 것은 그보다는 쉬울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문사철 쪽 대학원생들이 과대대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문사철 쪽이 대학원이 공대 등에 비해 열악한 것이 맞고, 대학원 환경 개선이나 대학원생 처우 개선에 관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으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선에서 끝나야지 문사철 쪽 사람들이 과대대표 되면 <정의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인문대 쪽 대학원생들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공대 쪽 대학원생 풀을 늘려서 균형을 잡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정도만 의견을 말했고 접수자는 “감사하다”고 답변했다. 그렇게 의견 접수는 끝났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대학원생을 꼬셔야 하는가?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당원이기는 하지만 당비 내는 것 말고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예 정당 근처도 안 가본 사람들한테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꼬실 것인가? 정당의 접근에 대학원생들이 심리적인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면 이러한 계획은 확실하게 망할 것이다. 적절한 수준은, 어떤 현안이 터졌을 때 그와 관련된 분야의 대학원생에게 간단한 문의를 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가령, 에너지 문제 관련해서 사회적인 쟁점이 생기면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한테도 물어보고 태양광 발전 관련 대학원생한테도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창구가 뚫리면 비공개로 관련 분야 대학원생들 모아놓고 의견도 구하고 교수 동향, 업계 동향 등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비공개로 해야 하느냐 하면 공개적으로 했을 때 지도교수가 안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해당 업계 종사자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다면 아무리 정치색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어느 정도는 움직이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평생 민주당 계열 정당에만 투표해왔는데 민자당 계열 정당 시의원이 민원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자 다음 선거 때 시장은 민주당을 찍더라도 시의원은 그 의원을 찍겠다고 했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의미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이 하는 말을 정치인들이 들어야 한다고 우긴다. 그런 말을 귀담아 듣는 정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유의미한 이야기를 이미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사람들의 말을 다른 정당보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대학원생들과 적절한 거리에서 주기적으로 접촉한다면, 15년 정도만 꾸준히 그렇게 한다면, 꼬셔놓은 대학원들 중 일부는 교수가 될 것이고 아마도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 풀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다른 거대 정당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정확하게 정세를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질 높은 정책을 생각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입시 교육 시키면 인성이 파괴되니까 미적분을 안 배우게 하고 대신 악기를 배우겠다고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은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청년 정치한다면서 청년 유한계급들이나 까불게 하는 것보다는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더 좋을 것이다.

<청년정의당>에서 대학원생들을 효과적으로 잘 꼬셨으면 좋겠는데, 그와 별개로 나는 청년도 아니고 철학 전공에다 교수가 될 법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모임 같은 것이 실제로 생긴다고 해도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는 공대 대학원생이 생기면 어떻게 꼬셔서 연락이 닿게 하도록 할 수는 있겠다.

* 뱀발

내 나이가 만으로는 35세인데 분류에 따라 청년에 속하기도 하나보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쯤이면 이미 나는 장년일 것이므로 <청년정의당>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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