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사과정은 철학과에서 다녔고 박사과정은 협동과정에서 다니고 있다. 둘을 비교하면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을 텐데, 행정처리 면에서는 확실히 철학과가 나은 것 같다. 철학과는 행정조교가 세 명이고 협동과정은 행정조교가 한 명이다. 이것이 철학과는 학부생들이 있고 협동과정에는 학부생이 없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행정처리는 철학과가 확실히 낫다. 철학과에서는 학생이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행정실에서 연락이 오고, 협동과정에서는 학생이 처리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그냥 행정상 불이익을 본다.
협동과정에서는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개강총회를 한다. 개강총회 자리에서 여러 가지 공지를 전달하는데 이 때마다 전공주임 선생님은 석사과정 2학기 학생들에게 지도교수 변경 신청을 할 것을 안내한다. 학과와 달리 협동과정에서는 석사과정생들이 입학할 때 전공주임 교수를 지도교수로 등록하고 2학기가 되면서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식으로 행정처리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행정상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 때 협동과정에 들어갔으므로 개강총회 때 안내하는 지도교수 변경 같은 것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박사과정 중에 지도교수님이 정년퇴임하게 되었다. 지도교수님이 퇴임하기 전에 후임 교수를 뽑은 상황이라서, 아마도 다른 사람 같았으면 8월 말에 지도교수님이 퇴임하시고 나서 9월 초에 지도교수 변경 신청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매번 개강총회 때마다 출석은 꼬박꼬박 하지만 공지사항은 대충 듣기 때문에 지도교수 변경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10월이었나? 전공주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전공주임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석사과정생들은 잘 몰라서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까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데, 박사과정생은 알아서 할 줄 알고 이야기를 안 했더니, 석사과정생들은 지도교수를 다 바꾸고 너만 지도교수를 안 바꾸었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이번 학기는 서류상으로 네 지도교수가 ◯◯◯ 선생님인 거지.”
다행히도 행정상 이상하게 되었을 뿐이지 실제로 내가 그 때문에 받은 불이익은 없었다. 전공주임 선생님은 이미 지도교수 변경 기한이 지나서 이번 학기에는 지도교수 변경 신청을 할 수 없으니 다음 학기에 변경 신청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그런데 ◯◯◯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정년퇴임하셨는데도 지도교수를 바꾸지 않네?”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좋긴 좋은데요, 그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021.09.05.)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