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단지성 뒤에 숨은 성 편향”이라는 칼럼은, <위키백과>가 집단지성의 좋은 예이지만 불평등지수가 논문이나 특허보다 높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든 사용자가 동등한 편집권을 가지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편집자의 대부분이 남성이며 <위키백과>로 보는 세상은 백인, 남성, 중산층이 보는 세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다음과 같은 반박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편집자 대부분이 남자인데도 그나마 제일 관리가 잘 되는 편이잖아? 그러면 애초에 편집자의 남녀비율 자체가 별 문제가 아닌 거 아니야?”
얼핏 보면 그러한 가능한 반박은 맞는 말로 보일 수도 있다. 남자가 편집하든 여자가 편집하든 <위키백과>는 성문화된 지식을 요구하니 여자 편집자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들 그 자체로 유효한 변화가 일어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가장 높은 정확도를 인정받는 것은 이공계 지식인데 어차피 교재나 강의안에 기반할 테니 편집자가 남자든 여자든 내용이 거기서 거기일 것이고, 인물 등재도 남성 과학자가 여성 과학자보다 훨씬 많으니 어쩔 수 없고 현실의 반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칼럼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페미위키>가 <위키백과>와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위키백과>에서 실제로 인물을 어떻게 서술하는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영문판 <위키백과>에는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두 남녀에 대한 서술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과학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와 이언 해킹에 대한 인물 서술이다.
낸시 카트라이트의 생애 항목을 보면, 특이하게도 결혼 이력과 자녀에 대한 정보도 나온다. 2004년에 남편과 사별했다는 것과 그 전에 결혼했던 다른 남편은 누구인지가 나오고, 카트라이트에게 두 딸이 있으며 그 딸이 외손녀를 낳았다는 사실과 그 외손녀들의 이름까지 나온다. 반면, 이언 해킹의 생애 항목에는 결혼이나 가정에 관한 내용 같은 것은 나오지 않고 다른 학자들의 생애 항목처럼 어느 학교에서 언제 학위를 받고 어디서 가르쳤는지만 건조하게 나온다.
생애 항목을 보고 ‘낸시 카트라이트는 남편 복이 없나 보네’ 하고 멍청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된다. 왜 남성 학자와 달리 여성 학자의 생애에는 유독 가정사가 강조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카트라이트가 여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결혼을 두 번 해서 생애 항목에 그런 내용이 들어간 것 아니냐고? 그런 것은 확실히 아니다. 왜냐하면 낸시 카트라이트의 전 남편이 이언 해킹이기 때문이다.
* 링크(1): [한국일보] 젠더살롱 <36> 집단지성 뒤에 숨은 성 편향 / 하미나
(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514130004277 )
* 링크(2): [Wikipedia] Nancy Cartwright (philosopher)
( https://en.wikipedia.org/wiki/Nancy_Cartwright_(philosopher) )
* 링크(3): [Wikipedia] Ian Hacking
( https://en.wikipedia.org/wiki/Ian_Hacking )
(2021.09.2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