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정에서 점심 때 보쌈을 주문해서 먹었다. 과학정책 대학원 설립 행사 때 일손 도운 사람들한테 수고했다고 과정에서 점심을 사주기로 했는데, 보쌈이나 초밥 같은 것을 배달시켜서 먹기로 했다. 보쌈 가게 중에 추천할 만한 곳이 있냐고 누가 물었을 때, 예전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왔던 게시글이 떠올랐다. 학교 근처에서 족발집을 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학교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왔다고 좋아하는 게시글이었다. 거기에 주문하기로 했다. <구구족>이라는 음식점이다.
<구구족> 홈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족발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족발에 인생을 걸었다니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보쌈이 도착할 때쯤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족발에만 목숨을 걸고 보쌈에는 안 걸었으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었다. 같이 먹은 사람들이 다들 맛있다고 했다. 인생을 허투로 걸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사업하는 사람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만나보면 사업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목숨을 건다니.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약간씩 경외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언제는 술을 먹다가 사업하는 분에게 그러한 경외심을 표현했더니, 그 분이 나에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비싼 술을 사준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경외심을 더 많이 표현한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인생을 건다는 말을 대학원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원 생활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동료 대학원생이 “나는 인생을 걸고 하는 일인데 처우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이 이 일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반-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 나: “인생을 왜 하찮은 철학 같은 것에 겁니까. 진짜 중요한 것에 걸어야죠.”
- 동료 대학원생: “진짜 중요한 게 어떤 건데요?”
- 나: “사랑이라든지, 부동산이라든지...”
물론 나도 철학이 고귀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딱히 대단한 작업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업계에서 쫓겨나지 않고 붙어있을 정도만 되기를 소망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의 얼마를 내가 하는 일에 걸고 있나. 보쌈을 먹으면서 인생을 걸고 하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족발에 인생을 걸었다고 하니, 다음번에는 족발을 시켜봐야겠다.
(2020.11.2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