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3

칼럼의 원고료가 낮은 것이 왜 문제인가



한국은 글값이 싸다고, 생필품 값도 오르고 부동산 값도 오르는데 원고료는 오르지 않는다고, 글만 써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대체로 보면 글도 못 쓰면서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 소리를 한다. 나는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왜 글만 써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글을 못 쓰는 사람들이 왜 글만 써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가?

물론, 설민석이 돈을 쓸어담는 동안 임용한 박사가 1년 동안 받는 인세가 400만 원 미만이라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 내 일도 아닌데도 가슴이 아프다. 당연히 그런 분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르포 기사를 쓰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몸소 취재하여 활자화 하는 사람들은 취재료나 원고료를 많이 받아야 한다.

내가 염두에 두는 글은, 연구의 결과도 아니고 취재의 결과도 아니고 조금만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것을 가지고 하나마나한 소리나 써놓고는 칼럼이라고 우기는 글이다. 내용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글이나 찍찍 쓰는 사람들이 글값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꼴값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화장실에서 똥을 싸면 오물료를 내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놈들은 똥 같은 글을 쓰면서도 마땅히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삼아서 똥을 싸니까 똥 싸는 것도 일이고 그래서 똥 쌀 때마다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들이 싸는 똥이 루왁 커피의 원료라도 되는가?

물론,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가치 없는 글이나 쓰는 사람들이 푼돈이나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라 원고료로 푼돈밖에 못 주니까 글 쓸 능력도 안 되는 놈들이 매체로 꼬이는 것이고, 그래서 원고료를 높여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좋은 글을 매체에 투고해서 똥글이나 쓰는 사람이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나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한다. 폴 크루그먼이 <뉴욕타임즈>에 2주에 칼럼 한 편을 쓰는데 칼럼 원고료로 1년 동안 받는 돈이 교수 연봉보다 많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쓰는 칼럼은 경제학원론 교재에 실릴 정도로 수준이 높은 글이다. 돈을 많이 주니까 노벨상 수상자가 칼럼을 쓰고, 노벨상 수상자가 칼럼을 쓸 정도니까 사람들이 많이 보고, 그러니까 매체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필자에게 많은 돈을 주는, 그런 선순환이 외국 매체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는 한국이다. 그러한 선순환은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불가능하고, 장기적으로도 가능할지 불확실하다. 한국 매체 중에서 고액의 원고료를 지불할 수 있는 매체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설령 고액의 원고료를 지불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글이 발행된다는 보장도 없다. 고액의 원고료를 지불한다고 한들, 이상한 글의 원고료만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신문 칼럼의 원고료가 늘어나면, 독일 학교는 천국인데 한국 학교는 지옥이에요, 나는 초파리 연구하는데 왜 내 연구를 무시합니까, 우리 엄마가 책 많이 읽고 잘난 척 했다가 우리 아빠한테 맞았어요, 하는 글의 원고료만 늘어날 것이다. 잡지도 비슷할 것이다. 청년이 아프다면서 앓는 소리나 하는 글, 연애 가지고 찡찡거리는 글, 아버지가 가정을 버렸다고 10년 넘게 우려먹는 글, 내 눈에는 이상한 게 보여요 하는 정신 나간 영화 칼럼 등등의 고료만 높아질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오물처리 비용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실현가능한 대안은, 아예 지금보다 글값을 더 못 받게 만들어서 이상한 칼럼을 쓰는 사람들이 글 써서 밥 먹고 살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은 어떤 매체의 고정 필자가 된다는 것이다. 고정 필자가 되면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글을 써야 하고, 그 만큼 그 사람은 단기간에 많은 글을 써야 한다. 시간과 기타 자원을 충분히 제공해도 글 같은 글을 못 쓸 사람들에게 단기간에 글을 써내라고 하니 말도 안 되는 글이 나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가면 된다. 필진이 충분히 많고, 각 필자는 글을 아주 가끔씩만 쓰게 하자. 칼럼 한 편당 원고료가 동일해도 필진이 두 배가 되면 같은 기간 한 사람이 원고료로 받아갈 수 있는 돈은 절반으로 줄고 필진이 열 배가 되면 10분의 1로 줄어든다. 경영상의 이유로 원고료를 줄이면 한 사람이 받아가는 돈은 그보다도 더 줄어든다.

필진이 늘어나고 같은 기간 한 사람이 받는 원고료가 줄어들면 어떻게 되는가? 얄팍한 글을 전문적으로 많이 쓰는 사람은 사라지고, 각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만 필진에 남을 것이다. 필자들은 평소에는 자기 전문분야에서 일하다가 가끔씩 일하기 싫거나 일이 잘 안 될 때 칼럼을 쓸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쓰는 칼럼이니 한 사람이 칼럼 한 편을 쓰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고정 필진이 있을 때보다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필진 관리 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칼럼 한 편당 원고료는 동일하면서도 칼럼의 질은 높아지게 될 것이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사람들은 학회에 게재료를 내면서 논문을 게재한다. 글도 제대로 못 쓰면서 글만으로 생활비를 확보하게 해달라니, 너무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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