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장에서 아저씨들이 대회에 나갔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시합 중에 비가 와서 각궁을 쏘는 사람들이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다.
국궁 대회에서는 개량궁으로 시합하는 종목이 있고 각궁으로 시합하는 종목이 있다. 개량궁과 달리 각궁은 온도나 습도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날씨가 더우면 활이 늘어나서 화살이 잘 안 나가고 날씨가 추우면 활이 안 펴져서 화살을 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이고 박제가도 『북학의』에서 조선 활이 쓸모없다고 비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가 사수들에게 치명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깃이 물에 젖어 뭉개지면 화살이 멀리 날아가지 않고 앞에 처박힌다는 것이다.
아저씨들은 장마 때 활과 화살이 맛이 간 경험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성계가 역적질 하려고 4불가론을 주장한 줄 알았는데 막상 겪고 보니 이성계 말이 맞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군인이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지 비 온다고 전쟁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면 정말 전쟁 수행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군사사를 연구하는 교수들 중에는 실제로 연구하는 시기의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인데, 15-16세기 유럽의 장창보병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 5미터짜리 장창을 쓰면서 초보자가 숙련자가 될 때까지 얼마나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등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흔히 창은 잡고 찌르면 되니까 비-숙련자도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창술이라는 것이 거저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5미터짜리 장창은 너무 길어서 창 앞부분이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다루기 어렵고 목표물을 찌르려면 훈련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일본 전국시대 창병들은 상대병 창병을 만나면 창을 거꾸로 잡고 자루로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는 농민들로 급조한 창병들은 숙련도가 낮기 때문에 창으로 찌르느니 차라리 자루로 때리는 편이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 뱀발
지난주에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고고학회 발표를 몇 개 들었다. 실험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흑요석 화살촉의 위력은 철제 화살촉보다 관통력이 25% 가량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한국에서도 실험고고학을 하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았다. 실험고고학을 하는 사람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험고고학 물품 판매업체도 있었다.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이라는 곳이다.
그 업체에서는 흑요석으로 화살촉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흑요석 화살촉 만들기 체험 세트도 판매한다. 한 세트(10인 제작체험용)에 인조흑요석 열 개가 들어있다. 인조흑요석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 세트에 27만 원이라 너무 비싸지만 사서 만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구입할까봐 업체 홈페이지에 있는 상품안내문에는 이런 경고문이 있다.
* 링크: 한국고고학콘텐츠연구원
( http://blog.daum.net/plascamp )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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