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 전공자들끼리 회식했다. 회식 중에 한 대학원생이 최근에 들은 신종 개소리를 언급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나 할까요?” 그 말에 다른 대학원생이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대신 꺼냈다. 당시 나는 “그런 말을 의미를 가진 언어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재즈 공연에서 하는 스캣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편의상 개소리를 아무런 유효한 내용도 없지만 이해하기 힘든 개소리(개소리1)와 이해하기는 쉽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개소리(개소리2)로 분류해보자. 이 중에서 스캣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개소리1이다.
개소리1은 어떻게 만드는가? 여기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해당 분야 이외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핵심은 관련 분야의 사람들도 쉽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있다.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처음에 어떤 개념을 도입할 경우 그 개념의 유와 종차를 제시하고 그 개념이 어떤 경우 어느 대상에 적용되고 적용이 안 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지 등을 보여주는데, 개소리1과 같은 유형의 개소리를 구사하고 싶으면 이와 정반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글의 첫 문장에 뜬금없이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써넣고, 그 다음에 어떤 개념을 소개하고, 그 개념을 기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겠다고 한 다음, 그 개념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설명하지 않고 인류가 처한 심각한 문제 같은 것을 나열하다가, 기존 언어로는 자신의 개념을 전달할 수 없다면서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도입하고, 그러면서 기존 언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궁시렁궁시렁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다가, 사람들이 미심쩍어하겠다 싶을 때마다 철학자나 유사-철학자의 이름을 갖다 박는다. 물론 철학자나 유사-철학자가 왜 등장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고 설명해서도 안 된다. 그 철학자나 유사-철학자가 글에 왜 등장하는지 설명하면 해당 글의 필자가 철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개소리에 심취한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개소리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두 사람 이상이 아무런 문제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무슨 말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런 반박이나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일종의 스캣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재즈 공연에서 어떤 보컬이 스캣을 하면 다른 보컬도 따라서 스캣을 넣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자라면 사전 조율 없이도 서로의 합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뽜-아압! 쁘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하는 푸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리듬을 타면 된다. 심지어 우리는 스캣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는 모르더라도 어떻게 넣는 것이 부적절한지는 잘 알고 있다. 멀쩡히 재즈 공연을 잘 하고 있는데 누군가 서영춘처럼 “부웃-브와라 봡봐- 붓-봐앗-봐~~ 인천 앞바다에...” 라고 넣는다면 설사 재즈를 전혀 모르더라도 그가 적절하지 않은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개소리도 마찬가지다. 개소리꾼들이 하는 것은 설명도 아니고 분석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개소리의 향연을 느끼면서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된다.
개소리2는 개소리1보다 훨씬 난이도가 낮으며 정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요령만 터득하면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개소리2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 1단계: 문제 설정
- 2단계: 역설처럼 보이는 주장
- 3단계: 아무 말
여기서 핵심은 2단계다. 무언가가 역설처럼 보이게 하면 된다. 실제 역설인지 아닌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며 역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일반적인 형식은 ‘A를 막기 위해 도입한 x가 A를 일으킨다니 역설적인 상황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형식에 맞추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가지고 역설처럼 보이는 주장을 만들 수 있다.
부모님이 임플란트를 했다고 하자. ‘임플란트의 역설’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낼 수 있다. 치아가 없으면 잘 씹지 못해서 뇌에 자극을 주지 못해서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뇌에 자극을 주기 위해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면 예전처럼 잘 씹게 되므로 뇌에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임플란트를 하면 수명이 늘어나고, 수명이 늘어나면 치매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그러므로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임플란트 시술이 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된다.
물론, 이건 개소리다. 옛날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서 이가 다 빠지면 뇌에 자극이 줄어들 틈도 없이 금방 죽어버렸다. 뇌 자극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틀니와 자연 치아를 비교할 때의 이야기다. 임플란트 시술이 도입된 주된 이유는 뇌 자극이 아니라 자연 치아와 비슷한 치아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수명이 늘어나서 치매에 걸리는 것이 치매에 걸릴 틈도 없이 죽어버리는 것보다 낫다. 이런 식으로 반박을 하려면 끝도 없이 반박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맥락을 고려하는 척하면서 슥 뭉개버리고 “치과보철학이 역설적이게도 치매를 일으킨다”라고 우기면 된다. 맥락을 고려하는 척하는 것은, 정당한 반박에 답변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역설 같은 주장을 해서 독자들이 어벙벙해지면 그 다음에는 아무 말이나 붙여도 된다. 인류세라든지, 포스트모던이라든지, 문명사적 위기라든지, 인간성의 상실이라든지, 데카르트라든지, 이분법이라든지 등등.
개소리1을 구사하려면 타고난 감각과 더불어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개소리2는 어떠한 대상의 속성과 그 대상이 놓인 상황이나 맥락만 파악하면 기계처럼 찍어낼 수 있다. 그래서 초보자는 개소리2 위주로 연습하다가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싶으면 개소리1을 연습하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개소리2의 뼈대에 개소리1의 표현 기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개소리꾼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것이다.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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