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모시 메이, 『몽골 병법: 칭기즈칸의 세계화 전략』, 신우철 옮김 (코리아닷컴, 2009), 69-92쪽. ]
1. 징집
1.1. 아르반(Arban), 자군(Jaghun), 밍칸(Minqan), 그리고 투멘(Tümen)
1.2. 케시크(Keshik)
2. 케시크와 칸
2.1. 타마(Tamma)
3. 기타 부대
4. 결론
1. 징집
70-71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 규모에 따라 몽골군의 규모도 달라짐
대칸 왕국(Great Khan)의 멍케간이 송나라를 침공한 1250년대 중반의 몽골군은 대략 90투멧
1투멧은 이론상 1만 명으로 구성된 군단
1투멧은 실제로 60%의 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멍케칸이 중국 남부를 정복하기 위해 보유한 병력은 54만 명
이 당시 중동에서 일-칸 왕국의 훌라구가 보유한 병력은 22투멧(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 출신의 외인부대 제외), 즉 대략 13만 2천 명
주치드 칸 왕국은 최소한 43투멧, 즉 25만 8천 명
차가타이드 칸 왕국은 얼마나 보유했는지 알 수 없음.
몽골제국의 전성기 때 멍케칸이 보유한 병력은 최소한 93만 명
기타 모든 지역에 배치된 몽골군을 모두 합하면 1백만 명 이상
71
<몽골족의 비사>(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에는, 칭기즈칸이 칸에 즉위한 1206년 몽골군의 규모가 9만 5천 명
71-72
15세에서 70세 사이의 모든 몽골 남자가 몽골군에 복무했다는 가정에 기초하여 몽골 인구 전체를 유추할 수 있음.
1241년에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 몽골 출신의 병사는 97,575명, 몽골 총인구는 723,910명.
한 가정당 식구는 대략 7.4명
평균 7명당 한 사람이 군인이라고 가정하면 1206년 몽골의 총 인구는 665,000명
그러나 몽골제국 전역에서 군사는 열 명당 한 명(이란 지역)이거나 스무 명당 한 명(중국)이 전형적인 비율이었기 때문에 십진법을 사용하는 군사 조직에서 그 외의 징병 방식을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음.
따라서 당시 몽골고원의 인구는 95만 명에서 100만 명 남짓이었을 것
1.1. 아르반(Arban), 자군(Jaghun), 밍칸(Minqan), 그리고 투멘(Tümen)
76
칭기즈칸은 십진법에 따라서 군대를 편성함
단위의 명칭
10명 단위는 아르반(Arban, 복수형은 아르바트[Arbat])
100명 단위는 자군(Jaghun, 복수형은 자구트[Jaghut])
1,000명 단위는 밍칸(Minqan, 복수형은 밍카트[Minqat])
10,000명 단위는 투멘(Tümen, 복수형은 투멧(Tümet))
거란족(Khitan)이나 여진족(Jurched) 등도 이미 군 조직에 십진법을 채택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십진법 도입은 혁신적인 것은 아님.
칭기즈칸이 십진법 군 조직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케레이트 족의 토그릴 옹-칸 수하에 있을 때였음.
1.2. 케시크(Keshik)
2. 케시크와 칸
2.1. 타마(Tamma)
3. 기타 부대
4. 결론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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