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2

철학과 학부생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원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알게 된 철학과 사람이 두 명(석사 한 명, 박사 한 명)이었고 그 두 사람을 보고 철학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직장을 옮기고 철학과 학부생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저 학부생들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교육 종사자의 말에 따르면, 철학과 학부생들은 자신의 철학적 지식에 대해 과신하거나,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자꾸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하거나, 특정 사안에 집착하여 불필요한 논쟁을 거듭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서 보여주는 등의 행동을 한다고 한다.

학부생들의 여러 이상 행동 중 사교육 종사자가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철학적 지식에 대한 과신이었다. 사교육 종사자는 행정학과를 성실히 다니면서도 자신이 행정학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자기가 아는 행정고시 합격자들도 자신들이 행정학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철학과 학부생들은 그러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철학과 학부생 중 대부분은 정상인이고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점이다. 그 소수는 왜 그런 증상을 보이는가? 철학과의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같은 질병이어도 증상이 나타나는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똑같은 조현병 환자여도 미국 환자들은 외계인을 언급하고 한국 환자들은 도청을 언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철학과 학부생병의 원인으로 의심할 만한 것은, 교육 기능을 잃었거나 애초부터 없었던 철학과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애초에 똑똑하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교육까지 못 받으니 지적인 모글리 상태가 되는 것이다. 교육 기능이 망한 철학과라면 교수들이 다 무능한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철학과마다 훌륭한 선생님은 한 분 이상 꼭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의인이 있었는데, 과에 훌륭한 선생님이 단 한 분도 없겠는가.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거나, 발휘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 가령, 학생들 사이에 이상한 밈이 계승되어서 훌륭한 선생님의 개입에 학생들이 저항하고 그러한 저항이 극렬하여 개입할 엄두도 못 낸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 밈이 그냥 밈이라고 하기에는 어감이 살지 않아서 프리온과 밈을 결합한 신조어를 만들고 싶은데, 막상 만들려니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까지 설명해도 의문은 남을 것이다. 똑똑하지도 않고 교육을 잘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상한 자신감이 생기는가? 나는 답했다. “심리학에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있대요.”, “그게 뭔데요?”,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더닝은 지도교수이구요, 크루거는 지도학생인데요, 그 논문에 네 가지 실험이 나와요. 그러니까 그게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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