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딸이 고등학교 때 대학 연구실에서 2주 간 인턴해서 논문의 제1저자가 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인가, 나와 너무 먼 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보는 것 같아서 현실 감각이 잠깐 마비된 것인가? 조금 씁쓸하기는 했지만 박탈감 같은 것이 들지도 않았다. 박탈감이라는 것은 내 것이거나 내 것이어야 했던 것이나 내 것일 수도 있었던 것을 빼앗겼을 때 드는 감정이다. 조국 딸이 가진 것은 내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몇 가지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 연구실에서 출퇴근을 기록하며 일하던 대학원생들은 그 사실을 알았을까?’, ‘저 정도 최상류층은 업체를 안 거치고 부모가 직접 자식 스펙 관리를 하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꼭 유승준을 보는 것 같다. 유승준이 다른 연예인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았던 것은 다른 연예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유승준에 대한 기대가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기대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싸이의 첫 번째 군 복무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싸이를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싸이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달랐다. 도대체 무슨 아름다운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고 군대도 안 다녀왔는데도 해병대 홍보대사를 했다. 그래 놓고는 군대를 안 가겠다면서 당당히 국적을 포기하니 사람들의 분노가 더 컸다. 만약에 조국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이 이 정도로 분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황교안이나 나경원이 그랬으면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조국은 왜 그렇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열심히 했을까? 조광조가 왕도정치 말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뻔하고 재미없고 비슷비슷한 글을 하루에도 여러 개씩 썼을까? 유승준은 아름다운 청년 행세를 하고 다니다가 국적을 포기했지만, 애초부터 국적을 포기할 마음이었는지, 원래 군대 갈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서 국적을 포기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와 달리 조국은 확실하다. 아름답지 않은 행동을 한참 먼저 하고 나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조국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면서도 그런 글을 썼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나 많이 글을 썼을까?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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