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1

직조와 명징



두 달 전쯤에 평론가 이동진이 영화 <기생충>에 한줄평을 남긴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동진은 <기생충>을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고 평했고, 이에 대해 ‘명징’이나 ‘직조’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맞냐 안 맞냐, 수능에서 국어영역 1등급 맞은 나도 모르는 단어다, 나는 이 단어 안다 멍청이들아, 대중을 상대로 하는 평론가가 이러면 안 된다, 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논쟁이 벌어졌다는 게 신문에 나올 정도로 당시 한국이 태평성대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랬다고 한다. 기사를 대충 때우려고 했던 기자들이 괜히 호들갑을 떨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어떤 것을 ‘직조’에 비유할 때 적절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글이다. 루쓰 코완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가사 노동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를 별도로 고찰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가사 노동과 도구의 관계는 상호적이며 때로는 변증법적이기도 하다. 도구는 가정에서의 수행 방식을 제한하지만, 발명가들은 새로운 도구를 유행시킴으로써 그러한 제한을 끊임없이 깨뜨려 왔다. 도구는 노동 과정을 재조직하여 새로운 필요를 창출했고 필요는 사람들로 하여금 또다시 새 도구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 이 책은 이렇게 다중적인 초점을 가진 역사를 집필하면서 어려운 과제를 다소 수월하게 하기 위해 ‘노동 과정’과 ‘기술 체계’라는 조직적 개념을 이용하였다.(20-21쪽)

[...] 지난 100년 간 미국 가정의 가사 노동에서 일어난 변화를 서술하는 것을 직조에 비유한다면, 노동 과정과 기술 체계라는 두 개념은 날줄과 씨줄에 비유될 수 있다. 생소한 용어지만 그 개념이 뜻하는 바는 중요하다. 이들 개념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개념은 압축된 묘사와 분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몇몇 중요한 특성들을 명확히 표현해준다.(24쪽)


루쓰 코완이 가사 노동의 역사를 직조에 비유한 것은 노동 과정과 기술 체계를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동진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냈다고 했을 때 ‘직조’라는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했는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봉준호는 영화 <기생충>을 통해 뭔가를 명징하게 보여준 것 같은데, 한줄평은 그리 명징한 것 같지는 않다.

* 참고 문헌

루쓰 코완, 『과학기술과 가사노동』, 김성희 외 옮김, 이기영 감수 (학지사, 1997)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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