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 6시 20분에 시작해서 8시에 끝나고 중간에 10분 쉰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수행평가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들었다. 국어 수행평가인데 선생님이 어떤 단어를 제재로 제시하면 그에 맞는 시를 지어 와야 한다고 한다. 시 짓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 감상 하는 법도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시 짓는 것으로 수행평가를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중등교육의 수행평가는 시간 낭비에 자원 낭비인 것이 분명하다. 마치 군부대에서 하는 이면지 활용과 비슷하다. 사단장이나 연대장이 각급 부대에서 이면지를 활용하라고 지시하면 이면지를 만들기 위해 새 종이에 아무거나 출력해서 이면지를 만들어 이면지 활용을 시행한다.
어떤 단어로 시를 쓰는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지하철, 집, 이런 것이라고 한다. 그까짓 걸로 무슨 시를 짓는단 말인가? 그런데 학생들에게 그런 단어를 듣자마자 시상이 떠올랐다. 곧바로 시를 지어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지하철 4호선
지금
당고개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승강장
사이가 넓어
발이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놀랍게도 곧바로 또 다른 시상이 떠올랐다.
네가 사는 그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니가 사는 그 아파트
그 아파트가 내 아파트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그러나 그 학생은 “그러면 큰일 나요. 국어 선생님한테 혼나고 빵점 받아요”라고 말했다.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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