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ael Ruse (1982), “Response to the Commentary: Pro Judice,” Science, Technology and Human Values 7(41): 19-23. ]
■ 이 글의 목적 [p. 19]
- 라우든의 비판은 흥미롭지만 요점을 완전히 빗나갔음.
- 세 가지 예비사항을 지적한 뒤 라우든의 우려에 답하고자 함.
■ 예비사항 [pp. 19-20]
- 예비사항(1): 오버튼 판사의 판결문은 최고 수준의 추론을 보여줌.
• 많은 사람들이 아칸소 주에서 “창조과학 법”이 통과된 것을 비판하지만, 우리는 오버튼 판사가 아칸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았음을 간과하면 안 됨.
- 예비사항(2): 오버튼 판사는 어떤 것이 과학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그것을 종교임을 증명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았음.
• 과학이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는 창조론자들이 자기들의 견해를 진정한 과학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제기된 것.
• 원고 측은 창조과학이 진정한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데 성공함.
- 예비사항(3): 라우든이 선호하는 결론과 전략은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움.
• 라우든이 선호하는 전략은 창조과학이 약한 과학이므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
• 미국 헌법이 교육에서 금지하는 것은 약한 과학이 아니라 종교임.
• 원고 측 전략은 창조과학이 약한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 아님을 보이는 것.
■ 루스가 답해야할 질문 [p. 20]
- 질문(1): 오버튼 판사의 다섯 가지 기준을 가지고, 과학과 비-과학을 구획할 수 있는가?
- 질문(2): 구획가능하다면 창조과학이 그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 질문(3): 판결은 정당한가?
■ 질문(1)에 대한 루스의 답변 [pp. 20-21]
- 구획 문제는 많은 철학자들을 괴롭힌 문제
• 구획 기준이 포퍼의 제안만큼 단순하지는 않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님.
• 많은 회색 지대가 있지만, 많은 경우 흑백이 분명하게 구분됨.
• 사례(1): 멘델의 첫 번째 법칙에 호소하여 눈동자 색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 사례(2): 천주교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했다는 설명은 비-과학적.
- 오버튼 판사가 제시한 다섯 가지 구획 기준은 이 둘을 구분하는 역할을 함.
• 법칙과 법칙에 의한 설명은 사례(1)에는 해당되지만, 사례(2)에는 해당되지 않음.
• 사례(1)은 시험가능하고, 경험적 증거에 따라 거부될 수 있으므로 잠정적임.
• 사례(2)에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신만이 알기 때문에 법칙에 의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음.
• 사례(2)에는 어떠한 경험적 증거도 기적에는 해당되지 않고 신념을 바꾸게 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잠정적이지 않음.
- 라우든은 과학자들도 항상 법칙에 의거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함.
• 예) 라이엘은 『지질학의 원리』에서 인간의 도래에는 신의 개입이 필요했다고 암시함.
• 이는 과학 법칙을 벗어난 것이지만 라이엘의 전반적인 연구는 과학으로서 인정받음.
- 가능한 답변
• 답변(1): 라이엘의 사례는 과학에 때때로 법칙과 비-법칙이 혼재함을 보여줌.
• 답변(2): 라이엘이 과학과 비-과학을 혼합했음을 보여줌.
• 루스의 입장은 답변(2).
- 루스는 라이엘이 과학자인 한, 법칙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함.
• 150년 전에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지 않았음.
• 답변(1)을 대안으로 생각해도 이는 라우든의 사례에 부합하지 않음.
• 과학도, 다른 여러 문화현상처럼, 진화함.
• 오늘날의 과학은 더 이상 법칙을 위반하지 않음.
• 우리는 19세기가 아닌 현대 과학의 구획 기준을 논의하는 것.
• 라우든은 현대의 판 구조론이 법칙을 깨트리고 기적처럼 보인다고 지적함.
• 그러나 과학이 법칙에 호소하나는 것은 우리가 모든 법칙을 안다고 말한 것은 아님.
- 라우든은 실제 과학이 잠정적이지 않다고 함.
• 핵심적인 주장들은 그 어떤 부정이나 수정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
- 루스는 잠정성에 관한 라우든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과장되었다고 함.
• 과학자들은, 심지어 뉴턴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었음.
• 경험적 증거가 완전히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과학자들의 태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함.
• 예) 20세기 지질학의 혁명
• 대륙은 움직이지 않는다(1960년대) → 대륙은 움직인다(1970년대)
• 해저 지각에 대한 새로운 경험적 증거가 나오면서 지질학자들이 설득됨.
• 과학은 포퍼의 생각처럼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지만, 쿤의 생각처럼 닫힌 것도 아님.
■ 질문(2)와 질문(3)에 대한 루스의 답변 [pp. 21-23]
- 창조과학의 문헌들은 창조과학이 과학임을 보이는 데 실패함.
• 기쉬나 모리스 등은 생명의 창조는 인간이 포착할 수 있는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근거한다는 점을 인정함.
• 이는 법칙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과는 다른 상황임.
• 신이 창조 과정에서 자신의 법칙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창세기에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그 법칙을 알 방법은 영원히 없는 것.
- 창조과학의 중심 주장은 잠정적이거나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하지도 않음.
• 그들의 연구 단체에 가입하려면 성경이 문자 그대로 참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등의 일련의 서약을 해야만 함.
• 진화론자들이 『종의 기원』에 대해 이러한 종류의 서약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움.
• 창조과학의 비-과학적 본성은 모든 면에서 드러남.
•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며 오버튼 판사는 그러한 판결을 함.
- 라우든은 창조과학의 어떤 부분은 수정가능하다고 함.
- 루스는 이것도 진정한 과학에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함.
• 창조과학자들은 물리학자들과 달리 작은 집단에서 고립되어 상상하고 글을 씀.
• 그들의 출판물에 따르면, 대홍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철회시킬 방법은 없어 보임.
- 창조과학의 수정은 진짜 수정이 아니라 자기들 입장의 모호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임.
• 창조론자들 사이에서 창조된 “종들”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주장들이 상충되는 것은 창조과학의 유연성으로 보이지만, 이는 신이 인간을 다른 종들과 따로 창조했다는 것 외에는 그들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임.
•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종’(kind)의 정의도 명확히 하지 못함.
• 창조론자들이 ‘종’을 다루는 모습은 과학자들에게서 기대되는 개방성과 안 비슷함.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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