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4

대학 동창 집에서 지낸 한 달

   
기숙사 리모델링 때문에 방학 두 달 동안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다. 원래 살던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하려면 왕복 네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개강하면 다시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으니 전세 계약을 하기도 좀 그랬다. 고시원에 몇 달 살아봤는데 생활조건이 썩 좋지 않았다. 찜질방에서 여러 날 살면 제대로 잠을 못 자서 건강이 망가진다. 내가 절충안으로 생각한 것은 한 번 등교해서 찜질방에서 자고 그 다음날 귀가하는 방식이었다. 찜질방에서 하루 자면서 건강을 약간 해치고 다음날 집에서 자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찜질방과 원래 집을 오가며 연구실에 주4일 출근하는 생활을 한 달 가량 하던 중,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대학 동창이 자기 집에 방이 남는데 와서 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제안을 받은 날, 나는 곧바로 그 집에 들어갔다.
  
한 달 동안 동창 집에서 잘 먹고 잘 지냈다. 어느 날은 동창이 치킨을 시켜먹자고 해서 나는 정리하던 자료를 팽개치고 연구실에서 나와 곧바로 동창 집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길에, 동창 집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내가 거의 다 먹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맥주를 사러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에 들렀다. 요즈음 자주 마시는 맥주가 블루문이다. 오렌지껍질 향의 청량함 때문에 즐겨 마신다. 한 번에 맥주 네 캔을 사야 할인해서 만 원에 살 수 있는데 블루문이 두 개밖에 없었다. 블루문 두 개와 기네스 두 개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블루문 여러 캔이 있었다. 내가 블루문을 좋아해서 동창이 미리 사놓은 것이었다. 동창은 통풍 때문에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기숙사 입주 전날, 환송회를 겸해서 고기를 구워먹기로 했다. 동창은 한우를 부위별로 사와서 부위별 특징을 설명하며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고기가 맛있어서 먹던 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 한 달 간 여기서 잘 먹고 잘 지냈는데, 오늘은 간다고 소고기를 굽네. 부모한테 효도하기 전에 OO한테 효도를 해야겠어.” 그 말을 들은 학부 선배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지난번에 제주도에서 방어회 먹을 때는 이렇게 맛있는 방어회를 엄마가 그동안 안 사줬다고 어머니가 너를 사랑하지 않나 하더니, 오늘은 소고기를 먹고 OO한테 효도를 하겠다는 거야?”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고기가 맛있는데 어쩐단 말인가.
  
동창은 유튜브나 팟캐스트로 돈을 벌어서 일주일에 3-4일 정도만 일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따로 사업을 할 생각인 것은 아니고 다니던 직장 다니면서 3-4일 정도만 일하고 싶다고 했다. 월급 덜 받고 출근 덜 하는 방식의 탄력적 노동 형태가 한국에 언제 등장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동창에게 “너 나중에 유튜브나 팟캐스트 하면 내가 돈 많이 벌게 해줄게”라고 했다.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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