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어떤 박사과정생이 대학원 수업에서 발제자 정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제비뽑기를 해서 순번을 정하고 순번에 따라 어떤 논문을 발제할지 정하자는 것이다. 그 박사과정생은 언어철학 대학원 수업에서 기말보고서 기획서를 발표하는 순서를 정할 때 제비뽑기를 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착안을 했다고 말했다.
나도 언어철학 대학원 수업에서 제비뽑기를 한 적이 있다. 보통, 제비뽑기를 하면 바구니 속에 쪽지를 넣고 휘저어서 누가 어떤 번호를 뽑을지 알 수 없게 하는데, 그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쪽지를 적은 후 그 쪽지를 번호 순서대로 넣고 앞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뽑게 했고 결국 앉은 순서대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선생님은 쪽지를 순서대로 넣는 것이며, 왜 학생들은 순서대로 쪽지를 뽑는가. 나 같으면 손을 밑으로 넣어서 뒷번호가 적힌 쪽지를 집은 후 쪽지를 휘저으며 손을 뺐을 텐데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이럴 때 보면 철학과 사람들은 약간 독특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발제자 정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선생님은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셨다. 나는 제비뽑기에 약간의 오락적 요소를 가미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들 학생증이 있을 것이니 수업시간에 모두 학생증을 꺼내도록 하고 선생님은 난수 발생기 같은 것을 가져와서 학생증 끝자리에서부터 한 자리씩 맞춰가며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난수 발생기 대신 OTP를 써도 될 것이다.
OTP에 나온 여섯 자리 숫자의 맨 끝자리와 학생증의 끝자리가 일치하면 우선권을 준다. 끝자리가 일치하지 않으면 학생증 끝자리가 OTP 숫자의 끝자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일치하는 사람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두 명 이상 나오면 다시 OTP를 눌러 OTP에서 끝에서 두 번째 수끼리 맞추게 한다. 그래도 두 명 이상 남으면 끝에서 세 번째 자리를 맞춘다. 이렇게 하면 그냥 제비뽑기를 하는 것보다 끝자리부터 쪼는 재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의견이다.
선생님은 내 의견을 다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 그건 좀 사행성이 있는 것 같은데?” 결국, 학생들이 각자 관심 있는 주제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발제자를 정했다.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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