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현상학 연구>라는 학술지가 있다. 어떤 대학원생은 그 학술지 이름이 조금 이상하다고 말했다. 학술지 이름을 <현상학>이나 <현상학 연구>라고 해도 괜찮을 텐데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과학철학 학술지 이름을 <철학과 과학철학 연구>라고 하면 이상할 것 같다. <철학과 근대철학 연구>, <철학과 언어철학 연구> 같은 이름도 이상하다. 외국 학술지 중에도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라는 학술지가 있으니까 그 이름을 따왔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외국 학술지는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가.
현상학 전공자들은 ‘철학=현상학’이라고 한다. 그러면 <철학과 현상학 연구>라는 이름은 더 이상하게 된다. <철학과 철학 연구>라고 해도 이상하고 <철학과 현상학 연구>라도 해도 이상하다. 이것은 마치 <샛별과 샛별 연구>라고 해도 이상하고 <샛별과 개밥바라기 연구>라고 해도 이상한 것과 같다.
나의 가설은 <철학과 현상학 연구>의 작명 방식이 옛날 투쟁위원회 작명 방식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 만든 투쟁위원회는 대부분 이름이 꽤 길었다고 한다. 투쟁위원회 이름이 긴 이유는 이름에 대략적인 투쟁 내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투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투쟁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너무 힘들어서, 투쟁위원회 이름만 봐도 투쟁 내용을 알도록 이름을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아마 <철학과 현상학 연구>도 비슷했을 것이다. <과학철학>이든 <근대철학>이든 대부분의 철학 학회는 이름에 “철학”이 들어가서 학회명만 들어도 철학과 관련된 학회라고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상학>이나 <현상학 연구>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느 분과에 속하는 학술지인지 금방 알기 어렵다. 학회명을 그렇게 지었다면 사람들은 “현상학이 무엇이냐?”, “현상학이 철학이면 왜 현상철학이라고 안 하고 현상학이라고 하느냐?”라고 물었을 것이고, 현상학 전공자들은 현상학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피상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그래서 현상학 전공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학회 이름을 <철학과 현상학 연구>라고 지은 것이 아닐까. 물론, 이 것은 전부 내 상상이며 현상학계의 의견과는 무관하다.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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