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혼자서 경비행기를 조종하다 사막에 비상착륙한 적이 있다. 비행기 모터가 망가진 것이다. 혼자서 비행기를 고쳐야 했다. 어떻게든 모터를 고치려고 했는데 고치지 못하고 결국 사막에서 잠이 들었다. 해가 뜰 무렵, 야릇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양 한 마리 그려 줘.”
인가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인데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사내아이가 나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과 배고픔과 목마름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양을 한 마리 그려 줘.”
너무도 신비스러운 일을 당하면 누구나 거기에 순순히 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리려니 양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하자 사내아이는 대답했다.
“괜찮아. 양을 한 마리 그려 줘.”
나는 양을 그렸다. 아이는 그림을 주의 깊게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 돼! 그 양은 벌써 병이 들었어. 다시 그려 줘.” 나는 또 그렸다. “이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있으니까.” 그래서 난 또다시 그렸다. 그러나 그것도 앞서 그린 것들과 마찬가지로 거절당했다. “이 양은 너무 늙었어.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을 가지고 싶어.”
더럽게 까탈스러운 애새끼였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죽을 판인데 양 그림이나 그려달라고 하다니. 나는 모터를 서둘러 분해해야 했으므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되는대로 그림을 끄적거려 놓고는 한 마디 툭 던졌다.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어.”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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