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27

윤지선 박사의 한남충 보이루 논문에 대한 가짜 논문을 쓰려다가



최근에 BJ 보겸이 자기가 여성 생식기에 인사하는 사람으로 학술논문에 실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보겸의 유행어이자 인사말인 “보이루”가 ‘보겸+하이루’가 아니라 ‘보*+하이루’인 것으로 윤지선 박사의 논문에 실렸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해당 영상을 보는 내내 웃었다. 당사자로서는 미칠 일이겠지만 어쨌든 웃긴 일이기 때문이다.

동료 대학원생 중에도 해당 영상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동료 대학원생은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에게 소칼처럼 한 번 해보는 것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라면 충분히 소칼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소칼처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여과 장치가 없는 학술지에 가짜 논문을 투고한 다음 해당 논문이 게재되면 그 논문이 왜 가짜 논문인지를 밝혀서 해당 학술지를 엿 먹이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분석철학 쪽 대학원생 중 상당수는 소칼 식 정의구현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마음먹고 시간만 조금 들이면 충분히 소칼처럼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료 대학원생들이 어디서 허튼 소리를 주워오면, 나는 그런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마치 피카소의 <황소> 연작처럼 단계별로 보여준다. 대륙철학을 정통으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와 달리 생각나는 대로 헛소리를 지껄이고 대륙철학의 개념어를 몇 개 뿌려놓고는 존재론이니 인식론이니 하는 소리나 늘어놓는 일은 쉬운 일이다. 술 먹다가도 할 수 있고 똥 싸다가도 할 수 있다. 지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물적 감각이나 야생적 본능 같은 것으로 대충 후려치면 되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 가짜 논문을 쓰면 될지도 금방 떠올랐다. 문제가 된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homomorphism)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이라는 논문은 저자가 ‘관음충’, ‘한남충’ 할 때의 벌레 충(蟲)에 꽂혀서 불완전변태과정 같은 소리나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저자가 아무 말이나 했다는 것은 논문 초록에도 나온다. 초록에 “한남유충-관음충-한남충이라는 용어가 배태하고 있는 곤충 군집체의 형태발생학적 착상(conception, ide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 논의의 배경(background)으로 삼고자 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작정하고 말장난하겠다는 말을 어렵게 꼬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한국 남성이 어떤 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면 힘드니까,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연구를 할 능력이 안 되니까, 벌레 충(蟲)에 근거해서 벌레 생장과정에다가 신문기사 몇 개 뿌려놓겠다는 것이다.

만일 ‘한남충’ 대신에 ‘한남균(菌)’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면 논문의 저자는 곤충 군집체의 형태발생학적 착상 대신 한남균에 대한 세균학적 접근이나 미생물학적 접근을 했을 것이다. 한남충이나 한남균이나 결국은 그놈이 그놈인데 왜 한남충일 때는 곤충의 생태로 접근하고 한남균일 때는 세균의 특성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애초부터 그딴 접근 방식 자체가 정신 나간 짓이기 때문이다. 「‘관음충’의 발생학」의 핵심은 인간이 아닌 동물로 비유된 인간 집단을 해당 동물의 생태와 연관 지어서 개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전혀 관련 없는 두 대상이나 집단을 아무렇게나 엮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윤지선 박사의 논문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윤지선 박사의 논문과 비슷한 방법으로 가짜 논문을 쓰려면, 동물 이름과 관련된 명칭으로 불리는 여성 혐오 집단을 골라서 해당 동물의 생태를 해당 집단의 행태와 억지로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된다. 여성 혐오 집단 중 동물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제비족이다. 여자들을 꼬셔서 등쳐먹는 사람을 이전 세대에서는 제비족이라고 불렀다. 제비족과 픽업아티스트는 여자를 일종의 정복의 대상이자 포획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제비족은 스스로를 제비족이라고 하지는 않는 반면 픽업아티스트는 당당하게 자신을 픽업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며 일종의 합법적 영리행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지점에서 살짝 비틀면 대충 가짜 논문의 구도가 나온다.

우선, 해방 이후에 일어났던 여성 관련 추문들을 조명하면서 제비족과 픽업아티스트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계보가 잘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대충 그럴듯하게만 지어내면 되니까 크게 상관은 없다. 제비족에서 픽업아티스트까지 이어지는 허구적인 계보를 만든 다음, 여성에 대한 착취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수법이 연성화되고 합법적인 영역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이는 마치 조류인 제비에서 인간인 호모 픽업티우스로 진화한 것과 같다면서 여성 착취에 대한 진화학적 접근을 한다고 주장한다. 제비족이든 픽업아티스트든 여성을 포획물로 보았다고 말한 다음, 포획물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까 사냥을 분류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는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를 인용한다. 플라톤 이름이 나온 김에 플라톤이 남성우월론자였고 서양 백인들은 다 그 모양이었다고 하면서 아무 말이나 털어 넣으면 된다. 이렇게 해도 개소리쟁이들은 논의가 풍부하다며 속없이 좋아할 것이다.

「‘관음충’의 발생학」을 실을 정도의 학술지라면, 한국남성을 규정하는 용어로 한남충이 아니라 한남균이 더 적합하다고 하면서 논의를 전개해도 낚일 것이고, 제비에서 호모 픽업티우스로의 진화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해도 낚일 것이다. 내가 만든 가짜 논문이 게재된 다음 그것이 왜 망한 논문인지를 설명한 해설서를 공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장판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난장판이 벌어질지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한국연구자정보>에 등록된 내 정보를 수정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아직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업을 검색하다가 선생님들의 논문 실적이 궁금해서 <한국연구자정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해당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들어간 김에 내 정보도 확인해 보았다. 나는 대학원에 대롱대롱 매달린 대학원생이지 아직 연구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석사학위가 있어서 <한국연구자정보>에 연구자로 등록되어 있다. 학사학위 기록 없이 석사학위 기록만 있어서, 나는 학사학위를 받은 학교와 시기를 등록했다. 내가 학부에서 전공과 관련하여 배운 것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학부 출신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상도덕(원산지 표시)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학위 정보를 수정하고 논문 실적란을 보았다. 내가 쓴 논문이라고는 석사학위 논문뿐이니 당연히 논문 실적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칸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번에 가짜 논문을 쓰면 그게 내 첫 논문 실적이 되겠네?’ 이 시점에 소칼 같은 짓을 하면, 나는 진짜 논문을 쓰기 전에 가짜 논문부터 쓴 미친놈이 된다.

소칼 이후로도 사이비 논문이나 게재하던 학술지를 응징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러한 정의구현을 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연구 능력을 인정받던 중견 연구자였다. 그들과 달리 나는 아직 연구자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정의구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뒷감당을 할 수 없다.

내가 그런 정의구현을 한다면 온 철학계가 다 좋아할 것이다. 한남충 같은 소리나 하는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면 정상적인 대륙철학 전공자들까지 괜히 욕먹게 되는데, 분석철학 쪽 대학원생이 그런 것들을 대신 손 봐주면 대륙철학 전공자들로서는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똥을 처리하게 되니 좋아할 것이다. 분석철학에서도 드디어 한국에서도 소칼 식 정의구현이 나왔다고 좋아할 것이다. 동양철학도 서양철학 쪽에서 싸움 났다면서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륙철학을 잘 모르지만, 대륙철학이나 대륙철학 전공자를 존중하고, 문학이나 인류학이나 사회학 같은 데서 대륙철학 가지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을 대륙철학 전공자에 대한 모욕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대륙철학 전공자들도 내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대충은 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보호해줄 것인가? 그러기에는 좀 곤란할 것이다.

분석철학 쪽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한 것도 아니고 혼자서 취미생활로 한 것인데 괜히 나를 옹호했다가는 분석철학 대 대륙철학의 구도로 오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분석철학 쪽에서도 아무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잘 해봐야 “걔가 애는 착한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연구윤리 무슨 위원회 같은 데 회부되면 나는 꼼짝없이 처벌받게 될 것이고 연구자로 데뷔하기 전에 은퇴 당하게 될 것이다. 업무방해죄 등으로 잡혀가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위원회에서 징계 받지 않고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어쨌거나 나는 진짜 논문 쓰기 전에 가짜 논문부터 쓰기 시작한 사람으로 학계에서 낙인찍힐 것이다. 학술대회 같은 데서 발표하다가 발표문에 미진한 내용이 있으면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다들 속으로 ‘사기 칠 때는 그렇게 잘 하더니...’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좀 까불고 다니면 지금보다는 형편이 나아지겠지만 그래도 안 까불고 근근이 사는 것은, 대외적으로 까불어제끼고 돌아다니는 것이 망한 대학원생의 표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논문도 못 쓰고 있으면서 가짜 논문이나 써서 물의를 일으키면 다들 나를 실력 없는 관심종자로 볼 것이다. 내가 실력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관심종자는 아니다.

언젠가 멋진 가짜 논문을 쓰기는 쓸 건데 그 전에 훨씬 더 멋진 진짜 논문을 많이 써놓아야 한다. 언제 진짜 논문을 쓰려나 모르겠다.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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