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5

겸손의 중요성 - 수시 모집 편



학부 때 들었던 경제학과 <미시경제학> 수업에서, 담당 교수는 수시 모집 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사회과학계열 수시모집 면접에서 학생들에게 주로 질문하는 사람은 정치외교학과 교수나 사회학과 교수라고 한다. 경제학과 교수는 학생한테 물어볼 것도 없고 다른 교수들의 질문에도 관심이 없고 학생들이 하는 대답도 전혀 흥미롭지 않아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 눈을 감고는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몽롱한 상태라 면접장에 학생이 몇 명이나 들어왔다 나갔는지 몰랐다고도 한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어떤 학생이 다른 교수들의 대답에 막힘없이 척척 대답하고 있었고 면접장 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었다. 교수들이 참 똑똑한 학생이라고 칭찬하니 학생이 우쭐했는지 “사실 저는 『맨큐의 경제학』을 떼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다른 교수들은 그 학생을 더욱 칭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맨큐의 경제학』을 떼었다는 학생의 말을 듣자, 경제학과 교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맨큐의 경제학』을 뗐다니. 시간 날 때 『맨큐의 경제학』을 훑어본 것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혼자서 『맨큐의 경제학』을 뗐다고? 대학에서도 두 학기에 나눠서 가르치는 책인데? 경제학이 그렇게 우스워?

- 경제학과 교수: “『맨큐의 경제학』을 한 번 읽어본 게 아니고 뗐다구요?”

- 고등학생: “네, 그렇습니다.”

- 경제학과 교수: “그렇다면 코끼리가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도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돼지를 거의 매일 먹지만 돼지의 멸종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구도 코끼리 고기를 먹지 않지만 코끼리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맨큐의 경제학』은 코끼리가 일종의 공유재산이라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사유재산인 돼지는 농장 주인이 자기 재산이니까 알아서 잘 키우지만 공유재산인 코끼리는 사냥만 하지 아무도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 때 그 학생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 학생이 『맨큐의 경제학』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텐데.”

겸손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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