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부생이 연구실에 찾아왔다. <기호논리학> 수업을 듣는데 조교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조교가 잠시 자리를 비워 학부생은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나는 학부생한테 말을 몇 마디 붙여봤다.
- 나: “철학과예요?”
- 학부생: “아니오, 1학년이라서 아직 전공 배정을 받지 못했어요.”
- 나: “아, 철학과 오려구요?”
- 학부생: “사회과학계열이에요.”
<기호논리학>은 철학과 전공 필수 수업이라서 철학과 학생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지만 다른 학과 학생이 굳이 이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
- 나: “그러면 <기호논리학>을 왜 들어요?”
- 학부생: “친구가 이 수업 재미있다고 해서요.”
본인은 반수해서 1학년이고 친구는 2학년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수업이라면서 <기호논리학>을 추천하다니 이런 나쁜 친구가 있나. 게다가 <기호논리학> 수업에서 벤슨 메이츠가 쓴 책을 교재로 쓰는 학교는 몇 군데 없다.
- 나: “경제학과에서 <기호논리학> 같은 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 학부생: “그런데 <경제학원론>보다 <기호논리학>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원론에서는 뭔가 짜임이 있어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 학부생의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너도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 <기호논리학>을 추천한 것이 아니고 정말 본인이 재미있어서 추천한 것이다. 친구한테 소개받아 그 수업을 듣는 그 학부생도 <기호논리학> 수업을 재미있어 한다. 역시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대학원 와서 여기 학부생들을 몇 년째 보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들은 나하고는 다른 종족인 것 같다.
(201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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