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1

인지과학캠프 뒤풀이 자리에서 들은 선생님들의 과거



<인지과학캠프>를 운영한 업체에서 캠프에 참여한 강사들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인지과학캠프> 끝나고 며칠 뒤 협회에서 하는 세미나가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가서 보고 관심 없어도 저녁만 먹고 가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그런데 저녁 먹는 장소가 고기집이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고기를 먹고 싶다. 고기를 먹고 싶지만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오늘 따라 연구실에 사람이 없다.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 먹으나 고기집에서 혼자 밥 먹으나 그게 그거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고기집에 혼자 가는 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강사 중에 원래 아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멀리 살아서 고기집에 혼자 갔다. 캠프 강사가 열네 명인데 고기집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상관없다. 나는 밥 먹고 가면 되니까. 다시 안 볼 사람이면 다시 안 볼 거니까 내가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어쩌다 계속 볼 사람이면 계속 볼 거니까 오늘 처음 보면 된다. 그러니 나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된다.


고기집에 갔다.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정체를 물어봤다. “캠프에서 강사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아저씨들이 갑자기 반가운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캠프 잘 됐어요? 아-아- 수고하셨네. 나 그거 한다고 이야기만 듣고 어떻게 됐는지 몰랐는데, 아-아- 반가워요.”


철학 전공이라고 하니까 유형화된 질문이 들어왔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철학에 관한 답변을 하려니 민망했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들은 아예 모르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고기를 한참 먹고 있는데, 그제서야 업체 직원이 왔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어떤 아저씨는 나한테 지도교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ㅈㅇㄹ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자기는 서양사학과 89학번이라면서 철학과 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학부를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ㄱ 선생님이 만든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수료를 했다고 한다.


“아, ㅈㅇㄹ 선생님! 내가 그분 수업 듣다가 포기했잖아. 왜 그런 줄 알아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용이 뭔지를 떠나서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아예 발음을 못 알아듣겠는 거야! 아하하하하!”


그랬다. 내 지도교수님의 발음은 20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 아저씨는 철학과의 다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원래 철학과 사람들은 한 번 꽂히면 완전히 푹 빠져요. 그때(1990년대 초반)는 철학과에 바둑이 유행이었어요. 시간만 나면 죄다 바둑을 두는 거야. 그때 학과장이 ㄱㄴㄷ 선생님인데 과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죄다 바둑을 두고 있는 걸 본 거예요. 열이 확 나잖아. 그래서 그 선생님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바둑판을 운동장에 내다 던졌어요. 아하하하하하!”



(201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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