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고양이 두 마리가 한 집에서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으면, 두 고양이는 자기 새끼 남의 새끼 가리지 않고 젖을 먹인다. 자기 새끼한테만 젖을 주면 두 어미 고양이 모두 하루 종일 자기 새끼한테 매달려 있어야 하지만, 자기 새끼 남의 새끼 안 가리고 젖을 먹이면 두 고양이가 각자 자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 고양이들이 각자 자기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공동 육아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고양이들이 분업하다 보니 시간을 활용하게 된 것이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분업을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역사학자 여사면(1884-1957)은 이렇게 말했다.
옛 사람들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두터운 정을 지니고 있었으나, 후세에 와서는 그런 혈연의 정이 많이 희박해졌다. 세인들은 이를 두고 고대 사람들은 인정이 후한 반면, 후세 사람들은 인정이 박하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친밀감은 양측이 함께 생활하는 데서 나온다. [...] 인간의 집단은 갈수록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고, 그 근원에서 경제 분업과 협력이 자리한다. [...] 이해관계가 같고 수시로 접촉하다 보면 자연히 깊어지게 마련이다. [...] 옛날에는 지금과 달랐다. 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부족 간의 왕래가 드물었다. [...] 고대에 동일 부족의 사람들은 대체로 혈연관계에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고대인의 감정상의 친밀함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부족 안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혈연관계에서 오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 간에는 모종의 천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이는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만약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 어떤 천성이 존재한다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어째서 어른이 된 후에 부모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 나는 동물의 경우를 예로 들고자 한다. 새끼를 낳은 암고양이 곁에 자기가 낳은 새끼 대신에 다른 어미가 낳은 새끼를 놓아두면, 그 암고양이는 그 새끼 고양이에게 젖을 먹인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단지 어미가 자신의 젖을 먹이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며, 그 욕구는 자신이 직접 낳은 새끼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류의 머나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시 인간의 능력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만일 모든 어머니들이 오로지 자신이 낳은 자녀만을 기르려 했다면 인류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아는 사례는 대단히 자주 발견된다. (42-44쪽)
* 참고 문헌: 여사면, 『삼국지를 읽다』, 정병윤 옮김 (유유, 2012).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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