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환경의 중요성이다. 누군가의 성공이나 사회적 성취는 단순히 그 사람의 재능과 노력의 함수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이 『아웃라이어』의 메시지다.
『아웃라이어』를 통해 화제가 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콤 글래드웰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언급한 것은, 1만 시간만 채우면 모두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연습 시간 1만 시간을 채울 여건이 안 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책에서 크리스토퍼 랭건과 오펜하이머를 대비하여 보여준 것도 이 때문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크리스토퍼 랭건은 지능지수가 180이 넘을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그러한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농장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랭건의 실패 요인은 인간 관계에서의 미숙함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관련된다. 반면, 뛰어난 재능과 좋은 환경을 함께 갖춘 오펜하이머는 학문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 모두 거머쥐었는데, 그가 다양한 사람들과 매끄럽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유복했던 환경이 유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정치인, 과학자, 군부, 행정관료 등 이해관계와 배경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넘나들며 공동의 목표를 이끌어냈고, 심지어, 대학원 시절의 오펜하이머는 지도 교수를 독살하려다 미수로 그쳤는데도 학교에서 별다른 징계조차 받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웃라이어』를 대충이라도 읽었다면, 성공 법칙이 아니라 사회의 역할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몇 년 전, 『아웃라이어』를 소개하는 한국 언론은 죄다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소리나 했고, 심지어 책 소개만 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도 『아웃라이어』를 소개한답시고 1만 시간 법칙 같은 소리나 했다. 교육 전문가, 철학 박사라는 사람들이 공영방송에 패널로 나와서 “1만 시간 정도 노력했는데 성공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나?”,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1만 시간 이상 공부를 하는데 왜 대부분은 공부를 못하느냐?”라며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며 시간을 까먹다가 다른 책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남이야 죽든지 뒈지든지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하면 되는 사람들에게 『아웃라이어』의 메시지란 훈련 시간 1만 시간을 채우라는 것뿐이었을 텐데, 언론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용했던 측면이 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 시점에 아직도 『아웃라이어』를 들먹이며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소리나 사람들을 보면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2015.10.0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