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자긍심이나 느끼려고 역사를 배운다면

20년 전쯤 KBS 1TV에서 <역사의 라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라이벌을 다룬 프로그램인데 어떻게 된 게 죄다 ‘다 알고 보면 좋은 놈이고 나쁜 짓처럼 보이는 것도 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끝맺는 내용이었다. “대원군 vs. 민비”에서 민비는 나름대로 국제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나왔고, “이순신 vs. 원균”에서도 원균이 나름대로 훌륭한 장군이었다는 식으로 나왔다. 개똥같은 소리다.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했던 것은 애초부터 프로그램의 목표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알리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대놓고 기획 의도를 “우리 역사 속에 대립, 대조되는 두 인물을 설정, 그들의 시대인식과 역사의식을 재조명한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되새겨 보는 역사 프로그램”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이후에 나온 <역사스페셜>도 죄다 ‘고구려가 얼마나 강했나’, ‘고구려가 왜 강했나’,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어떻게 물리쳤나’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방송에서 역사를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i) 우리 민족은 옛날에 얼마나 잘 나갔는가와 (ii)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입을 어떻게 물리쳤나, 이렇게 둘 중 하나다. 방송에서 역사라는 것은 시청자들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도구 정도였다. 유럽사, 중국사, 일본사 등 한국사 이외의 역사가 방송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마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봐야 다른 나라 역사에서는 자긍심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일어났는지만 다루어도 살펴볼 것이 많다. 자긍심이나 느끼려고 배우는 하면 배울 게 얼마 없고 배워봤자 유치해질 뿐이다. 그놈의 ‘자랑스러운 역사’, ‘우리’ 역사가 역사를 보는 시각을 편협하게 만든다. <역사의 라이벌> 류의 역사관이나 정부와 여당의 역사관이나 큰 차이가 있는가?

역사는 무엇이고 왜 배워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 반대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닌 것 같다.

* 뱀발: 그러고 보니, <역사스페셜>에 이덕일 박사가 꽤 자주 출연했었다.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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