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언론 매체에 등장해서 자기 분야도 아닌 분야의 일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하는 교수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화법이 일반적인 교수들의 화법과는 약간 다르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교수들은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면 남들 만큼 웬만큼 아는 내용이더라도 잘 모른다며 살짝 한 발을 뺀다. 뻥쟁이 교수들은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마치 남들이 잘 모르는 부분을 포착한 것처럼 그 분야와 자기 분야의 접점을 언급하면서 슬그머니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한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해당 분야의 개론 수업도 안 들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뻥쟁이 교수들은 쫄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주장을 개진한다.
여기서 핵심 기술은 자기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이다.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한 분야를 극진히 알면 다른 분야의 이치까지 능통하게 되는 것처럼, 마치 『논어』에 나오는 일이관지(一以貫之)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마치 불법 견인차량이 사고차량에 당당하게 고리를 걸듯이, 어떻게 자기 분야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처럼 말을 꺼내면서 거의 모르는 분야에 자연스럽게 고리를 거는가? 이런 교수들은 사이버 렉카에 빗대어 ‘아카데믹 렉카’라고 부를 만하다.
1990년대나 2000년대까지 아카데믹 렉카의 주요 분야는 인문학이었다. 문학 쪽에서는 모두가 다 알법한 시시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와 아무 상관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고리를 걸었다. 가령, 한국어의 별것도 아닌 표현을 가지고 개억지를 쓴다든지, 한중일 3국이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따지고 보면 그런 것들은 문학도 아니었다. 문학 전공자라고 권위를 앞세운 다음 아무 이야기나 늘어놓았을 뿐이다. 같은 문학이라고 해도 셰익스피어라든지, 괴테라든지, 톨스토이 소설 같은 것으로는 고리를 못 걸었다.
역사학 쪽에서는 한국사로 고리를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화사나 경제사로는 고리를 걸 수 없다.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피상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부분을 뚝 떼와서 맥락 제거하고 현대 한국의 정치나 사회를 논하는 방식으로 고리를 걸었다.
철학 쪽은 문학이나 역사 쪽보다 질이 나빴다. 철학 렉카들은 그냥 미친 척하거나 샤먼인 척하거나 신탁받은 척했다. 철학하고 아무 상관 없이 자기 일상 이야기를 해도 멋모르는 사람들이 ‘저게 철학인가 보다’ 하고 받아주었다. 아직도 그런 나쁜 습성이 언론에 남아 있어서, 방송에서 아무 말이나 독특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부르고 싶을 때 종종 철학박사를 패널로 부른다. 철학 활동은 진작 마감하고 사실상 만담가나 상담가로 활동하는 사람을 불러놓고는 “철학자의 지혜를 들어본다”고 진행자가 바람을 잡기도 한다.
2010년대 쯤에 렉카 분야의 판도가 약간씩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인문학이 세상 모든 일을 다루는 것처럼 굴면서 사실은 자기 분야도 안 다루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까불었는데, 2010년대가 되면서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다. 인문학 일색의 아카데믹 렉카 시장에 다양한 전공의 렉카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아카데믹 렉카들이 무대뽀 식으로 고리를 걸었다면, 2010년대 이후의 아카데믹 렉카들은 방송에서 자기 분야와 관련된 강연을 하여 인기를 얻은 뒤 다루는 분야의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고리를 걸었다.
심리학 렉카의 영업방식을 보자. 처음에는 인간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살살 하다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리 분석을 한다고 하면서 역사학도 건들고, 정치적 인물에 대한 심리 분석을 한다고 하면서 정치에도 고리를 걸었다. 다루는 인물이 국내 인물이면 국내 정치에 고리를 걸고, 해외 인물이면 해외 정치에 고리를 건다. 교육자의 심리도 말하고 학습자의 심리도 말하면서 교육 문제에도 고리를 걸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심리도 말하면서 경제에도 고리를 건다. 이미 경제학에 행동경제학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렉카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뇌과학 렉카는 심리학 렉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한다.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인간의 심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심리학은 인간 심리를 다루니, 심리학 렉카는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고리를 걸었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뇌의 활동이 관련되고, 뇌과학은 인간의 뇌를 다루니, 뇌과학 렉카는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 고리를 걸어도 되는 상황이 된다. 심리학 렉카의 길을 따라가던 뇌과학 렉카가 심리학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다. 알파고 충격을 계기로 뇌과학 렉카는 인공지능에도 고리를 걸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2010년대 이후에 등장한 아카데믹 렉카 중에 가장 혁신적인 것은 건축학 렉카이다. 건축은 공간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공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 고리를 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어떤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인간이 어떤 활동을 하든 공간의 제약을 받으므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공간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건축을 구실삼아 공간에 고리를 걸기만 하면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에 고리를 걸 수 있게 된다. 국내 정치 공간에 고리를 걸어 국내 정치를, 해외 정치 공간에 고리를 걸어 해외 정치를, 드라마 세트장에 고리를 걸어 드라마를, 항구나 항로에 걸어 무역을, 중국에 걸어 반중을, 일본에 걸어 친일을 언급할 수 있다. 이 고리에는 안 걸리는 것이 없다.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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