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9

결국 철거된 어떤 대학원대학교의 건물



내가 사는 곳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종교 관련 대학원대학교가 있다. 산에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밖에서는 그 학교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따라 괜히 그 학교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산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건물 한 채는 완공되었고 공사 중인 건물도 여럿 있었는데 유독 한 건물만 방치되어 있었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한참 건물을 짓던 중 어떤 사람의 사유지 100평 정도가 해당 건물에 들어간 것이 드러나서 사유지 주인이 학교 측에 소송을 걸었고, 결국 사유지 주인이 이겨서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2020년 7월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10월, 그 건물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어머니와 함께 그 학교에 가보았다. 건물에 “본 건물은 5월 24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강제집행으로 철거될 예정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5월 24일이 2023년 5월 24일인지 2024년 5월 24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법원에서 철거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최근에 그 학교 근처에서 친척 할머니 부부와 점심식사를 했다. 동네 주민의 아들이 그 근처에서 식당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친척 할머니 부부를 모시고 간 것이다. 그 학교의 건물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오랜만에 그곳에 가보았다. 학교에는 건물이 몇 개 더 생겼고 계속 산을 파고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그 건물만은 완공되지 않은 채로 마치 케이크를 썰어놓은 것처럼 썰려 있었다.

멀쩡히 지어놓은 건물이 썰리느니, 땅값에 건물 철거 비용을 얹어서 해당 토지를 사는 것이 학교로서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건물에 들어간 땅이 100평이라고 하니, 평당 200만 원으로 책정해도 2억 원이고 평당 300만 원으로 책정해도 3억 원이다. 땅 주인이 그 가격의 두세 배를 불렀어도 학교는 그 돈을 지불하고 땅을 샀어야 했다. 땅 주인이 10억 원을 불렀어도 땅을 사는 게 맞다. 땅 주인이 왜 땅을 팔지 않았는지 자세한 사정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소설을 써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만약 땅 주인의 목적이 학교로부터 돈을 더 받아내는 것이었다면,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건물 철거 명령을 받아냈더라도 철거 집행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의 일부분을 철거하면 학교도 타격을 입지만 땅 주인도 해당 토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건물과 맞붙어 있는 100평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근처를 둘러싼 땅이 대부분 학교 소유일 테니 그 100평에 집을 지을 수도 없다. 전기, 수도, 가스 등을 제공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매점 같은 것도 열 수 없다. 100평에 할 수 있는 것은 농사 정도밖에 없는데, 그것도 텃밭 수준의 농사다. 이미 건물을 부순 뒤라면 학교에서는 해당 토지를 살 이유가 없다. 땅 주인이 학교에 팔려고 해도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다. 그 학교가 없어지기 전까지 땅 주인이 해당 토지를 활용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땅 주인이 건물 철거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은 경제적 목적 때문에 소송을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학교에 엿을 먹이려고 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학교에서 땅 주인을 어지간히 약을 올렸던 모양이다.

건설 현장에서 경계 측량하는 것을 보면 건설업체가 실수로 토지를 침범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측량할 때 빨간 말뚝만 꽂아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들이 빨간 말뚝을 박으면 건설업체 직원들이 따라다니면서 기계에 GPS 좌표를 입력한다. 남의 땅에 건물 지었다가 큰일나는 수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측량하고서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건물을 토지 경계에서 자기 쪽으로 약간 들여서 짓는다. 실수로 몇 센티 침범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땅을 100평이나 침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순한 성토작업도 아니고 아예 건물이 남의 땅에 들어갔다는 것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남의 땅을 먹을 작정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남의 땅을 어떻게 먹는가? 간단하다. 건물을 철거하려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내용증명만 받아도 감옥 가는 줄 알고 벌벌 떠는 시골 사람들이 섣불리 소송을 할 가능성은 낮다. 소송 끝에 법원으로부터 건물 철거 명령을 받더라도, 철거하는 순간 그 땅은 못 쓰는 땅이 된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몇억 원짜리 땅이 쓸모없는 땅이 되는 것을 감수하며 건물을 철거하겠느냐고 학교나 업체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학교나 업체에서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일단 건물부터 지은 다음 땅 주인을 회유하고 협박했을 것이다. 어차피 건물 지었는데 부술 거냐, 건물 부수면 너도 그 땅 못 쓴다 하는 식으로 협박한 뒤, 얼마 줄 테니까 이 돈이라도 받으라고 회유했을 것이다. 웬만한 시골 사람이라면 그런 얄팍한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동네에 꽤나 독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골 동네에 그런 사람이 많지도 않을 텐데, 학교가 건든 사람이 마침 그 사람이었으니 어지간히 운도 나빴다. 어쩌면 땅 주인은 자기 땅 100평만큼 건물을 철거하면, 학교에서 해당 면적만큼만 건물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건물 전반적인 설계를 다 바꾸어야 해서, 건물을 아예 새로 짓거나 그 못지않은 구조변경이 이루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골 동네에서 그 정도를 내다보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땅 주인이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면 학교는 심하게 운이 안 좋은 것이다.

나는 물류창고와 관련한 민사재판 항고심에서 원고측 조◯옥 변호사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공판 때 조◯옥 변호사는 “토지 경계를 침범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다들 아는데 원고가 남의 사유지에 흄관을 묻었을 리 없다”며, 애초에 원고가 흄관을 남의 땅에 묻은 것이 아니라, 허가받은 위치에 제대로 묻은 흄관이 공사가 중단된 지 오래되면서 흙이 밀려나 우리집 사유지에 들어갔다고 변론했다.(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2심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그러게. 토지 경계를 침범하면 큰일나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왜 남의 토지를 침범해서 큰일을 당할까?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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