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4

옆집의 가건물을 철거하다



옆집이 우리집 농지를 얼마나 침범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2월 12일(수)에 경계 측량을 하기로 했는데, 전날 밤부터 눈이 와서 일정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2월 20일(목) 오후 1시 30분에 경계 측량을 했다. 경계 측량하는 날, 옆집에서는 둘째 딸, 둘째 딸의 친구인 공사업자, 셋째 딸과 사위가 왔다. 셋째 딸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성미 급한 둘째 딸이 일을 저지를까 봐 같이 온 것 같았다.

실측 결과는 네이버 지도를 보며 철거 견적을 냈던 것과는 달랐다. 주택의 한 귀퉁이가 우리집 농지에 포함되어 있었다. 침범한 만큼 건물을 잘라내면 다용도실을 날려야 한다.

한 달 전, 네이버 지도를 보며 공사업자 친구와 철거 견적을 낼 때 둘째 딸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듯 보였다. 건물이 안 들어갔음에 안도하며 철거할 테면 해 봐라 하는 식이었다. 당시 둘째 딸은 옆에 있던 자기 친구에게 “아니, 아버지가 집을 이렇게 지은 것을 나보고 어쩌라고!”라고 하며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측량하며 건물 본채가 들어간 것이 드러나니 기세가 한풀 꺾인 것처럼 보였다.

둘째 딸을 따라온 셋째 딸도 측량 결과를 보고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셋째 딸은, 옛날에 서로 토지 구획을 명확하지 않아서 서로 양해하여 토지를 바꾸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도둑놈의 새끼 같은 소리다. 도대체 어느 땅을 바꾸어 썼단 말인가? 우리집은 병◯네 땅을 쓴 일이 없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남의 땅을 침범하여 미안하다고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된 놈의 집구석이 남의 땅을 침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놈이 없다.

셋째 딸의 말에 나는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른데요?”라고 답했다. 1996년에 옆집에서 주택을 지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께 “저 집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만 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놀랍지만, 하여간 그랬다고 한다.

지난달, 나는 병◯와 그의 부인인 고◯희와 그 둘의 새끼들이 얼마나 못돼먹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둘째 딸에게 보낸 적이 있다. 너희 집구석하고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딸은 막내 동생하고 오해를 풀어야 한다면서 우리 보고 막내 동생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 역시나 도둑놈 새끼들은 발상부터 남다르다. 어머니는 “막내 동생이 잘못했으면 막내 동생이 우리한테 와야지 왜 우리가 막내 동생에게 가느냐?”고 따졌다.

옆에 있던 셋째 딸은 나에게 “가슴에 미움이 쌓이면 본인도 힘들다”고 말했다. 성인군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 셋째 딸도 땅 도둑질 하려던 것에 대해서 일언반구 사과나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악한 종자가 어디로 가겠는가? 셋째 딸은 고등학생 때 다니던 학교의 교사를 꼬셔서 그 교사의 집안을 파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셋째 사위가 그때 그 교사다.

셋째 딸도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오해한 것 같지는 않구요, 막내 아들의 흉계를 제가 다 알아요. 제가 카카오톡으로 다 정리해서 보내드렸어요.” 그러자 셋째 딸은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둘째 딸에게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자고 했다. 둘째 딸이 하도 죽는소리를 하니,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발동하려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이 막내 아들 집이었으면 내일 썰어버릴 텐데, 일단 생각을 해보지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둘째 딸이 나보고 “면사무소에 신고한 거 취소하면 철거하지 않아도 된다던데?”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인가? 이래서 못된 새끼들은 틈을 주면 안 된다. 어떻게 그 짧은 순간 이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 역시나 못된 습성은 타고나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딸의 불쑥 튀어나온 말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본채 주변에 있는 가건물과 시멘트 포장은 확실히 다 뜯어낼 것이고, 건물을 썰지 여부만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옆집 것들이 대를 이어 못돼먹은 것을 생각하면, 주저없이 집을 썰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내가 기독교화되어서였을까? 이 집에도 한 번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을 족치기 전에 반드시 한 번 이상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할 기회를 주었다. 못된 새끼들은 기회를 주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꼭 기고만장하면서 덤볐지만, 어쨌든 나는 한 번 이상은 기회를 더 주었다.

나는 막내 아들과 며느리가 진실한 사과를 하기만 하면 집 주변의 가건물과 시멘트 포장은 다 뜯어내더라도 건물 본채만은 남겨두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진실한 사과란 무엇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해명하고 용서를 구해야 최소한의 사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둘째 딸에게 대략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달했다.

(1) 김◯◯이 지정한 시각과 장소에서 김◯완-박◯란 부부 둘 다 미리 작성한 반성문을 무릎을 꿇고 읽으며 사죄한다.

(2) 반성문은 김◯완과 박◯란이 각기 따로 작성한다.

(3) 사죄하기 전에 반성문 내용을 미리 김◯◯에게 보내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 없거나 거짓이 포함되면 사과할 의사가 없다고 간주하여 ◯◯리 454 원상복구 절차를 진행한다.

(4) 김◯◯은 김◯완과 박◯란이 반성문을 무릎 꿇고 읽는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다.

(5) 김◯완과 박◯란은 반성문 읽는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 및 유포하는 것에 대한 동의서를 사전에 작성한다.(사진이나 동영상 유포는 향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경우를 상정한 것이며 새로운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해당 사진이나 동영상은 유포하지 않는다. 유포할 경우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가리거나 모자이크 처리한다.)

(6) 김◯완과 박◯란은 반성문을 다 읽고 난 뒤 반성문 원본을 김◯◯에게 제출한다.

(7) 김◯완과 박◯란은 반성문을 스캔하여 유포하는 것에 대한 동의서를 사전에 작성하여 제출한다.(유포할 경우 개인정보는 가릴 예정)

(8) 반성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8-1) 김◯완의 반성문

-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앞부분 일곱 자리

- 행정사 정◯창을 데려온 이유

- 행정사 정◯창과 사전 모의한 내용

- 2020년 말 김◯효에게 관행적 수로를 없애자고 말한 이유

- 2021년 2월 ◯◯리 415(답) 일대를 성토할 때 ◯◯리 416-1에 성토를 시도한 이유

- ◯◯리 415(답) 일대에 성토할 때 김◯◯이 경계측량을 요구하자 흙을 뒤로 쌓는 대신 김◯◯이 돈을 물어내야 한다고 말한 이유

- 성토 작업으로 인한 농로 파손에 관한 입장

- 2024년 12월 라◯◯에게 김◯◯과 윤◯◯의 사과를 요구한 이유

(8-2) 박◯란의 반성문

-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앞부분 일곱 자리

- 행정사 정◯창을 데려온 이유

- 행정사 정◯창과 사전 모의한 내용

- 2021년 2월 ◯◯리 415(답) 일대를 성토할 때 근무시간 중 윤◯◯에게 전화를 건 이유

- 2021년 2월 윤◯◯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말

- 2021년 2월에 한 통화가 도청 건설국 소속 공무원으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

- 2022년 11월 19일(토) 오전 10시경 ◯◯리 853(도)에서 김◯◯에게 한 말과 그런 말을 한 이유

- 2022년 11월 19일(토) 오전 10시경의 한 행위가 도청 건설국 소속 공무원으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

- 김◯◯이 ◯◯리 853(도)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 주장에 현재의 판단

나는 옆집에 건물을 보존할 길을 열어주었다. 나의 요구사항에 답변할 시간도 충분히 주었다. 3월 3일(월) 오후 9시까지 답변하면 되니 열흘 정도 시간이 남은 셈이다. 그때까지 사과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과할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둘째 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옆집 둘째 딸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 둘째 딸은, 자기는 죽었으면 죽었지 막내 동생한테 그런 것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기도 건물을 써는 것은 반대하지만,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것은 진짜로 하니까, 막내 동생한테 사죄하라고 하라고 말했다. 둘째 딸은 자기 손으로는 도저히 집을 썰 수가 없으니 나보고 썰라고 했다. 내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다리가 발발 떨려서 운전할 수 없어 자기 집에 못 가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괜히 운전하지 말고 그 집에서 자고 내일 가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둘째 딸이 나의 요구조건을 막내 아들과 며느리에게 전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막내 며느리에게도 전송했다. 막내 며느리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모두 확인했다.

통화하는 내내 어머니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통화가 끝나고 어머니는 남의 집을 썬다고 하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너무 안 좋아하니 나도 좀 그랬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3월 3일까지 시간을 넉넉히 주었으니, 그때까지 좀 곯아보라고 하다가 막내 아들 내외가 사과 비슷하게라도 하면 어머니가 봐주는 것으로 해서 건물은 남기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옆집 사람들은 어머니께 빚을 진 것이 되니, 내가 다른 지역에서 직업을 구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함부로 굴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측량하고 난 바로 다음 날, 전날 보았던 공사업자 아저씨와 그의 동료로 추정되는 또 다른 아저씨가 옆집에 왔다. 둘째 딸은 공사업자에게 최대한 빨리 철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사업자는 날이 아직 안 풀렸으니 기온이 영상이 되면 그때 하자고 했다. 철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거 후에 벽돌로 낮게 담을 쌓아야 하는데, 땅이 덜 녹았을 때 공사하면 지반이 주저앉아 재시공해야 할 수 있다. 나는 공사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3월에 철거하고 담을 쌓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둘째 딸은 최대한 빨리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정말로 철거하려는지 가건물 주변의 짐을 모두 치웠다.

내가 당장 치우라고 한 것도 아니고 3월 3일까지 충분히 시간을 주었는데도, 옆집 둘째 딸은 자기 성미를 못 견디겠는지 철거 준비를 했다. 둘째 딸이 짐 정리한 것을 살펴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건물 밖에 있는 짐은 모두 치웠는데 다용도실 안의 짐은 하나도 치우지 않은 것이다. 가건물 철거하지만, 건물은 철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 전날 나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집을 썰겠다고 했고, 둘째 딸은 절대로 자기 손으로는 건물을 썰지 않겠다고 했다. 건물 밖에 있는 짐을 치운 옆집 둘째 딸의 행동은 일종의 시위였던 것 같다. 어디 네 손으로 집을 썰 수 있으면 썰어보라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나는 분명히 옆집 둘째 딸에게 그의 부모와 형제가 주변에 어떤 나쁜 일을 했는지, 특히 막내 아들과 며느리가 어떤 짓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한 글을 보냈다. 그 글은 너희 족속들은 나쁜 사람들인 것 같다는 나의 인상을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 중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사건만 골라서 서술한 것이라서, 당사자가 사실을 인정하거나 해명하거나 부인하기 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옆집에서는 글의 내용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옆집은 무단점유한 우리집 농지에 대한 임대료를 약 30년 가까이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내가 2012년 처음으로 우리집 농지에 대한 임대료로 만 원만 달라고 했는데도 옆집 둘째 딸의 어머니인 고◯희는 “현찰로는 주더라도 통장으로는 죽어도 못 준다”며 버텼다. 점유 취득을 할 작정이었으니 자기에게 불리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희는 말만 그렇게 해놓고는 현금으로도 그 돈을 주지 않았다. 2024년에 10만 원을 받으려 할 때도 둘째 딸은 어떻게든 내놓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첫째 딸에게 빌린 돈부터 갚은 다음에야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다. 옆집 둘째 딸은 처음에 우리집 농지와 그 집 토지의 경계선이 그 집 건물을 빗겨난 것처럼 보이자 “아버지가 집을 이렇게 지어놓은 것을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역정을 냈다. 셋째 딸은 분명히 내가 둘째 딸에게 보낸 글을 전달받았을 텐데도 “막내 며느리에게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더라”라고 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내가 막내 아들과 며느리의 구체적인 행동과 대략적인 일시까지 적어서 보냈는지도 그랬다. 둘째 아들과 막내 아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 집 형제자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부모의 일이나 형제자매의 일이나 자신의 일에 대하여 단 한 마디도 실토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딸이 나에게 시위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을 썰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나는 옆집 건물을 썰기 위해 집에 끼어 있는 도로까지 샀다. 옆집을 써는 과정에서 우리집 건물도 같이 썰릴까봐 길을 산 것이다. 남들은 내 나이에 집을 산다, 차를 산다 하는데, 나는 4400만 원이나 들여 고작 길바닥을 샀다. 옆집과 전쟁하려고 길바닥까지 산 나와 기싸움을 하겠다? 가만히 둘 수 없다.

나는 어머니께 “저것들 괘씸한 거 봐라. 한 놈도 사과하는 놈이 없다. 유감이라고 하는 놈도 없다. 이번에 건물 안 썰면 저것들이 여차하면 기어오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며칠 전처럼 괴로워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생각해도 괘씸한 것이다. 옆집이 무단점유한 농지는 어머니 명의의 토지이지만, 어머니는 옆집에 대한 처분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다.

오늘은 공사업자 두 명이 옆집에 와서 가건물의 양철판을 뜯어냈다. 원래는 양철판을 절반만 뜯으려고 했는데 시멘트 포장을 뜯어내려면 포크레인이 들어와야 해서 가건물을 다 뜯게 되었다고 한다.

시멘트 포장을 뜯는 것은 쉬운 일인데 정화조를 옮기는 게 문제다. 정화조를 뜯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파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업체에 물어보니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공사업자 아저씨가 이와 관련하여 양해를 구해서, 나는 그러라고 했다. 시멘트 포장 뜯는 것 따로, 정화조 옮기는 것 따로 하면 포크레인 부르는 값이 두 배로 든다. 포크레인 부르는 데 60-70만 원에 인건비 30만 원 내외면 100만 원 정도 들 텐데, 굳이 쓰지 않을 돈을 쓰게 만들 이유는 없다. 그래서 석 달 후에 하라고 했다.

점심시간 지나고 분뇨 수거 차량이 와서 정화조에 있는 오물을 뽑아냈다. 잠깐 쉬는 동안 나는 공사업자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둘째 딸이 이 건물 썬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저씨는 그런 말은 듣지 못했고 가건물만 헐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다. 역시나 둘째 딸이 나에게 시위한 것이었다.

건물을 썬다는 나의 말에 아저씨는 이 동네 토박이이고 나의 아버지하고도 아는 사이이고 옆집 둘째 딸과 친구인데 한 동네 이웃끼리 이러는 것은 보니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옆집에 행패 부리는 미친 놈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옆집의 내력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저씨는 옆집 둘째 딸의 아버지인 병◯를 동네 유지라고 알고 있었다. 병◯의 신세를 진 사람도 많다고 했다. 나는 병◯는 남의 땅을 넘보고 훔치는 것을 즐겨한 도둑놈이자, 멀쩡한 동네 사람 괴롭히고 부려 먹은 못돼쳐먹은 놈이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어디서 들었냐고 해서 나에게 증언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했다. 아저씨는 약간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아저씨한테 선대의 일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실제로 동네 사람들 중 선대에서 문제가 있었으나 당대에는 같은 문제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충분히 도왔다. 옆집은 선대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대에도 문제를 저지르고 형제자매가 죄다 못돼먹었기 때문에 응징하는 것이다.

막내 아들과 며느리가 한 짓을 대강 읊으니 아저씨가 허탈한 듯이 웃다가 “막내 아들이 사고를 크게 쳤구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내 아들만 못돼먹은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형제자매들의 행패를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건물을 썰기는 썰어야겠구만?” 나는 아저씨한테 건물을 어떻게 썰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아저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 뱀발

왜 집에 길이 끼어 있는가? 원래는 마을 길로 쓰던 길이 있었는데, 다른 길이 생기면서 원래 있던 길은 쓰지 않게 되었다. 우리집 앞쪽에 있던 길과 뒤쪽에 있던 길은 각각 다른 사람들이 매입하여 사유지가 되었는데, 우리집만 길을 매입하지 않아 그대로 길로 남은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창고와 사랑채를 허가도 받지 않고 개축할 때 증축까지 하면서, 길 위에 창고와 사랑방을 지어놓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합작품이 바로 집에 끼어 있는 길이다. 결국 그 길을 내가 최근에 샀다.

농로를 사려면 한국농어촌공사와 시청으로부터 국유자산 용도폐지 결정을 받아낸 뒤, 한국자산관리공사와 매매 계약을 맺어야 한다. 국유자산 용도폐지 절차를 시작하려면 현황도가 필요하다. 현황도는 경계 측량과 달라서 한국국토정보공사가 아니라 설계 사무소에서 제작해야 한다. 현황도만 제작하고 100만 원만 낼지, 설계사무소에 행정업무까지 다 맡기고 150만 원을 더 낼지 고민했다. 당시가 2023년 11월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2024년에는 바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직접 행정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업체는 제때 일을 처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단계별로 한 달 이상씩 지연되었다. 내가 처리했으면 아무리 못해도 6개월은 처리 기간을 줄였을 텐데, 괜히 돈만 150만 원 더 내고 일 처리만 늦어졌다. 내가 업체를 족칠 마땅한 방법은 딱히 없었다. 어쨌거나 할 말은 해야 하니, 업체 사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단계별로 한 달씩 늦어진 거 시청을 통해 다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는 당신 업체와 거래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하고 일할 때는 그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업체 사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기도 도로 매입은 처음 해보아서 일이 미숙했다며 거듭 사과했다. 사과하는 데 내가 더 뭐라고 할 수가 있나? 다음번에는 일을 잘 하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2023년 11월부터 도로 매입 절차에 착수해서 2024년 12월에 한국자산관리공사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박정희 때 거저 샀어야 하는 것을 2024년에 사려니 고작 50평 남짓 되는 땅을 사는 데 4400만 원이나 들었다. 공시지가(약 2300만 원)로 살 줄 알았는데 시세로 샀다. 앞으로 땅값을 3년 동안 할부로 내야 한다.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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