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5

인문학 관련 망상 ─ 도덕성 함양,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



한국 사회에서는 인문학과 관련된 몇몇 망상들이 통용되는 것 같다. 가령, 인문학 공부가 개인의 도덕성 함양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우연히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나 근거를 물어본다. 딱히 근거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그럴듯한 대답이었던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할 기회가 많을 테니 이것이 개인의 윤리적 측면에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것도 그렇게까지 설득력 있는 답변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 중 상당수는 법조인들을 불신한다. 법조인들은 어떤 것이 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주 5일 이상 고민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들의 도덕성을 의심하는가?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도덕성 함양에 도움을 주는데,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왜 그렇지 못한가?

내가 보기에 인문학을 도덕성과 연관 짓는 것은 성리학의 잔재 때문인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다른 후보가 없다. 석사과정 때 종교철학을 전공하는 독일인 유학생에게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발상을 소개하니, 그 유학생은 인문학과 도덕성이 왜 연관된다고 보는지 그러한 발상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인문학과 도덕성을 엮는 발상은 서구에서 넘어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또 다른 인문학 망상으로는 “삶과 분리되지 않은 앎”이나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성리학도 아니고 양명학의 잔재인가? 조선에서 양명학의 흔적이라고는 유의미한 것이 강화학파밖에 없는데 말만 학파지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가족들하고 공부한 것에 불과하다고 양명학 전공자한테 들은 적이 있다. 양명학 전공자가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 같은 소리나 하면서 돌아다닐 것 같지는 않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유래한 일종의 밈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까? 어느 윤리교육과 대학원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에는 거의 무자격자에 가까운 사람도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 문구를 언급하는 프로그램을 본다면, 하나 같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거나 특정 정치적 견해를 옹호하려고 삶 같은 소리나 한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일상적인 경험에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찡찡거릴 때 한가하게 옛날 글이나 대충 읽고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과 분리되지 않은 공부이고, 정신의학과 관련된 공부는 삶과 분리된 공부이다. 빵 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 앎이지만, 빵 굽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공학 지식은 삶과 분리된 앎이다.

삶과 분리되지 않은 공부라는 것은 공부이기나 한 것인가? 삶과 분리된 공부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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