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6

옆집 막내딸의 오해



아침에 어머니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옆집 막내딸로, 논에 트랙터가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말뚝을 박아놓아서 못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나는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옆집 막내딸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 어디서 그런 것이냐, 농기계 지나가게끔 다 조치를 취했는데 그런 곳이 있느냐, 내가 직접 가서 처리하겠다, 근처면 나와라” 하고 말했는데 옆집 딸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우물우물하더니 트랙터 몰고 온 아저씨가 논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짓는 사람이 일을 못 하고 있다고 하니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나는 논으로 뛰어갔다. 밥 먹은 직후인 데다, 비까지 와서 한 손에는 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우산을 들고 뛰니 힘들었다. 가서 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해당 토지는 증조할머니 소유였다가 내가 가까스로 찾은 땅이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1975년인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둘 다 워낙 게으르고 경제 관념이 없어서 50년 동안 상속 절차를 밟지 않았다. 하마터면 국유지가 될 뻔한 것을 가까스로 물려받게 되었다.

해당 토지는 80평 내외인 좁은 땅인 데다 상당 부분은 수로와 농로로 쓰이니 할아버지나 아버지 눈에는 쓸모없는 땅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멍청하니 알토란 같은 땅을 죄다 헐값에 다 팔아먹고 고작 내 손에 코딱지만 한 집과 손바닥만 한 밭이 남은 것이다. 그 땅을 지나지 않고는 주변의 여러 논밭으로 갈 수 없어서 그 땅을 움켜쥔 사람이 마음먹고 권리 행사를 하면 주변 일대가 다 난감해지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그게 어떤 땅인지도 모르고 집구석에서 방바닥이나 긁고 있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재작년에 증조할머니 땅을 찾고 작년 가을에 경계 측량을 했다. 가뜩이나 가난해 죽겠는데 쥐어짜서 측량했다. 권리 행사를 안 하니 건너 집(옆집이 그 집 옆에 지붕 높이만큼 흙을 쌓아서 파묻히게 생긴 집)에서는 그 땅에 호박을 키우고 있었고, 뽕나무 등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농기계가 지나간 바퀴 자국을 보니 호박과 뽕나무 등을 제거하지 않으면 농기계가 논에 진입할 때 측량용 말뚝을 밟게 생겼다. 건너 집 아주머니한테는 호박을 따다 드리면서 이번까지만 호박을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좋게 잘 말씀드린 다음, 뽕나무 등을 모두 뿌리째 뽑았다. 배수 때문에 묻은 흄관 주변에 흙이 쓸려 내려가서 농기계가 빠지게 생겨서 손수레로 흙을 날라 빈틈을 메웠다.

농기계 지나가라고 걸리적거릴 나무도 다 없애고 흙까지 퍼부었는데, 왜 농기계가 못 지나간단 말인가? 내가 측량용 말뚝 근처에 있는 풀을 모두 깎고 고추막대기까지 꽂아놓으니까 옆집에서는 내가 못 지나가게 하려고 한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어쩐지 내가 우리집과 증조할머니 땅을 오갈 때 옆집 사람들한테 인사하니 사람들 표정이 밝지 않더라니. 옆집 둘째 아들은 내 인사를 받고는 한참 망설이다 논에 가냐고 나에게 묻는데 말을 똑바로 못 하고 더듬었다. 우리 집 땅을 낼름하려고 온갖 수를 다 쓰던 막내아들, 그 사기꾼 놈의 새끼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인사를 해도 대답을 안 하고 고개만 까딱한다. 사람이 먼저 밝게 인사를 하면 소리내서 또박또박 답해야지, 나이가 나보다 열댓 살 많으면 많은 거지 싸가지 없게 고개만 까딱하는 건가? 행정사 하는 선배 공무원까지 데려와서 우리 집에 사기 치려다가 나한테 걸린 다음에 다짜고짜 나한테 시비 걸던 땅딸하고 똥똥한 막내 며느리는 아예 땅에 고개를 처박고 호미로 흙바닥을 긁고 있었다.

혹시라도 농기계 바퀴가 빠질까봐 내가 배수로에 쌓인 흙을 퍼내서 흄관 옆에 쌓고 집에 남는 흙을 퍼오는 동안, 옆집 막내아들과 며느리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 보는 척하면서 계속 힐끔힐끔 나를 보느라 일을 제대로 못할 수밖에 없었다. 전원주택 주민들이 산책하다 내가 수로에서 흙을 퍼올리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서 답을 하니 사람들이 다들 나보고 착한 아저씨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착한 게 맞다. 그런데 이 두 년놈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다른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옆집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머니는 농기계가 지나가다 경계 표시한 것을 훼손할까봐 정돈한 것일 뿐 농사짓는 데 불편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옆집 막내딸에게 말했다. 그러자 막내딸은 “이용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며 여러 번 감사를 표하고는 “사실 새로 길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권리 행사 하면서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 못 짓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들은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 최근까지도 자기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어떤 집의 20대 초반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논농사하는 거 돕다가 급해서 그 집 밭을 가로질러 간 일이 있었는데, 옆집 첫째 딸이 그걸 보고 남의 땅에 왜 들어오느냐고 난리 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인접 토지 소유주 중에 옆집 첫째 딸의 학교 동창이 있는데, 그 집에서 풀씨가 날라온다고 풀 관리하라고 시비 걸었다고 한다. 풀씨는 중국에서도 날아오는데 옆집에서 풀씨 좀 날아오는 것 가지고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제초제를 뿌리려고 하면 자기네 채소는 아이가 먹는데 제초제 날아오면 안 된다고 또 난리쳤다고 한다. 작년에만 그런 게 아니고 올해도 또 그랬다고 한다. 흉악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미루어서 남의 행동을 보니, 나름대로 선한 의도로 한 행동조차도 공포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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