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다양성재단에서 제인 구달 박사의 방한 일정을 보좌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욕을 먹고 있다. 이게 욕먹을 일이 아닌데, 프레이밍을 잘못 잡아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에 아예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제인 구달 박사님의 방한 일정을 옆에서 보좌하고 함께 수행할 영광스러운 역할의 자원봉사자를 공개 모집합니다!”라고 써놓았다는 것은, 자원봉사자 하겠다는 사람이 줄 섰다는 말이다. 자원봉사면 자원봉사지 얼마나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면 “영광스러운 역할”이라고 할까?
봉사 좀 했다는 게 대학 입시나 전문대학원 입시에 왜 반영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명문대에 가고 싶은 외고 학생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고 싶은 이과대 학생이 자기소개서에 제인 구달이 어쨌네, 고릴라가 어쨌네, 마지막 방한일 수도 있다고 해서 코끝이 찡했네, 생명 다양성이 어쩌네 하는 내용을 쓴다고 해보자. 보나 마나 말도 안 되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지만 제인 구달의 마지막 수행원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촌구석에 가서 영어 캠프 봉사 같은 것을 했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펙이다. 이 정도면 재단에서 수행원에게 돈을 주며 일을 시킬 게 아니라 오히려 자원봉사자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 재단 관계자들의 친인척들이나 지인 자녀들에게 봉사 활동을 맡겼으면 소리소문 없이 좋은 스펙을 쌓고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괜히 자원봉사자 공개모집을 해서 오히려 욕을 더 먹으니 생명다양성재단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욕을 먹는 이유는 자기네들이 먼저 들떠서 설레발을 쳤기 때문이다. 재단에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 하는 것을 영광스럽다고 생각할 텐데 재단에서 먼저 들떠서 영광스럽네 어쩌네 하는 문구를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 붙였다. 그 문구를 보니 재단이 돈 주고 시킬 일을 돈 한 푼 안 주고 부려먹으려고 수작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사람들이 해야 할 말을 재단에서 먼저 해버려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원봉사 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간단하다. 일정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에게 제인 구달 박사의 수행원이 될 자격을 경매한 다음, 수익금은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생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돈 주고도 못하는 일을 하게 되어 영광스럽다고 말해도 아무도 이의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단 운영자들이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교훈을 얻었다면 제인 구달 수행원 자원봉사자 모집은 비난받는 일이 아니라 칭송받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일은 문학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왜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통섭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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