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rles Coulston Gillispie (2016), The Edge of Objectivity: An Essay in the History of Scientific Ide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
Charles Coulston Gillispie (1960), The Edge of Objectivity: An Essay in the History of Scientific Ide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찰스 길리스피, 「제9장. 초기 에너지학」, 『객관성의 칼날』, 이필렬 옮김 (새물결, 2005), 397-쪽. ]
[400-]
갈릴레오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철학적 설명에 만족하지 않았음.
그는 운동은 다른 물체와의 관계의 변화라고 봄.
이러한 운동론은 상대 운동과 절대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인도함.
즉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무엇에 대해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뉴튼은 공간을 모든 운동의 기준틀로 잡았고, 그것이 절대적인 좌표계라고 보았음.
뉴튼은 그 좌표계 안에서 모든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뉴튼의 절대 공간에 반대함.
공간은 실체가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간의 관계라고 봄.
진공은 아무 것도 없는 무 자체였음.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의 공간에 어떤 물체가 하나 있다면, 그 물체의 운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음.
그냥 정지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기 때문임.
이렇듯 공간상의 물체의 운동은 다른 물체와의 상대적 관계에서만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공간 개념이었음.
뉴튼의 절대 공간 개념은 사물의 형상을 올바로 반영한 것이 아니었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힘.
공간은 시간과 결합하여 시공간을 형성하며, 수축되기도 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구부러지거나 휘어질 수도 있다고 함.
이렇게 해서 20세기의 물리학은 19세기 물리학의 결함을 보완함.
기계론 []
19세기 물리학은 많은 물리학적 현상들을 입자의 운동과 충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었음.
그러나 공간상에서 중력이 전달되는 현상이나, 전자기론에서 다루던 장의 현상 - 빛의 파동적 특성과 전자기 유도현상 등은 그러한 역학으로 이해할 수 없었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에서 이러한 힘을 전달하는 매체를 가정하는 것이 필요함.
19세기 물리학은 에테르라는 실체가 공간을 채우고 있어, 공간상의 현상의 전파를 위한 매질의 역할을 했다고 믿었음.
그러나 20세기 상대성 이론은 에테르의 필요성을 제거해 버림으로, 에테르는 상대성 이론 속으로 사라짐.
물리학은 또한 자연의 통일성, 즉 물질과 에너지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만 했음.
19세기 물리학은 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힘을 전달하는 유체가 있다고 생각함.
이 유체는 실체로서, 연장(공간상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개념)을 가지며, 보존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수학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음.
이 유체는 열을 전달하는 열소로서 칼로릭이라고 불렸음.
그리고 이 칼로릭의 문제를 연구하는데서 열역학이 출발하게 됨.
이 열역학은 에너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제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이 모습을 드러냄.
그리고 칼로릭 개념은 에너지와 엔트로피라는 개념 속으로 사라짐.
기계론으로 자연과 그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에테르나 칼로릭은 상대성 이론과 에너지학이라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짐.
이들은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을 초래한 19세기 물리학의 결함이었던 것임.
과학이 지닌 객관성의 칼날은 여지없이 비-객관적인 요소들을 잘라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형이상학은 언제나 과학의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어떨 때는 과학에 영감을 주기도 함.
객관성의 칼날이 얼마나 예리하든지 간에 형이상학적 특성을 완전히 도려내지는 못할 듯함.
* * *
[403]
“증기기관이 과학에 빚지고 있는 것보다 과학이 증기기관에 빚지고 있는 것이 더 많다.” – 헨드슨(1878-1942)
제임스 와트(1736-1829)
“영국에서 증기 기관을 빼앗는 것은 석탄과 철도를 동시에 빼앗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모든 부의 원천을 고갈시킬 것이며, 그 번영이 의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멸망시킬 것이며, 저 거대한 힘을 근절시킬 것이다. 영국이 가장 강력한 방어력이라고 생각하는 해군을 파괴하는 것조차도, 이것과 비교하면 별로 치명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403-404]
사디 카르노(1796-1832)
사디 카르노는 증기기관을 모형으로 삼아 가장 효율적인 열기관 연구에 착수함.
열기관 연구의 기본 목적은 열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에 한계가 있는가, 그리고 증기보다 더 유효하게 힘을 전달하는 것이 있는가 하는 것.
그렇지만 에콜 폴리테크닉 출신으로 가능한 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은 카르노는 연구를 일반화함.
증기기관이라는 특수한 것의 연구로부터 즉각 “열에 의한 운동의 생성”이라는 문제를 추상하여 가장 이상적인 열기관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
카르노의 열연구는 19세기 물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뉴튼 역학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물리학의 허점을 드러내었다.
19세기 뉴튼 역학은 물체의 연장(공간 속에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물질의 성질), 질량, 속도(운동)을 기본으로 한다. 힘은 질량에다 운동의 변화를 곱한 양으로 정의함.
이러한 상황에서 물리학자는 작용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
힘, 일, 열, 불, 화학적 반응성, 자기, 전기, 생명 등을. 힘의 전달은 기본적으로 접촉을 전제함.
민다든가, 충격을 가하는 것 등은 접촉으로 힘이 전달되는 과정임.
그러나 접촉되지 않은 물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물체에 힘이 가해지는 현상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설명해야 할까?
또한 기계론적 물리학이 자연을 기술하는데 과연 적절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음.
기술자가 인간이나 동물, 바람이나 물의 운동으로부터 지레, 도르레, 기어, 스크류 등에 전달되는 힘만 다루어야 한다면, 고전 역학의 원리만으로도 충분했음.
그러나 열을 동력으로 삼자마자 고전 역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됨.
증기에 의하여 피스톤이 밀려가는 것과 원통 속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의 관련성을 어떻게 모멘트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카르노는 이러한 깊은 논의에 집착하기 않았음.
그는 열을 단순히 받아들인 뒤, 열을 전달하는 열소 즉 칼로릭이 있다고 전제함.
그는 칼로릭을 보존되는 성질이 있는 유체로 취급함.
그리고 증기기관의 운동은 칼로릭의 흐름으로 인한 것이라는 이론이 전개함.
따뜻한 물체에서 찬 물체로 칼로릭이 흐름으로 평형이 깨어지고 그 이후 다시 평형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피스톤 운동이 생김.
즉 칼로릭이 자신의 준위를 찾아 복원되는 과정에서 동력이 끌어내지는 것.
이러한 메카니즘은 카르노의 영구기관에서 구현됨.
기체는 압축되면 뜨거워지고, 팽창하면 냉각됨.
기체를 압축시키면서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하려면(등온압축), 우리는 그 기체속의 칼로릭을 제거해야 함.
역으로 팽창시키면서 온도가 내려가지 않게 하려면(등온팽창) 칼로릭을 공급해 주어야 줌.
이른바 등온압축, 등온팽창이라는 개념이 나타남.
이러한 열역학에 근거하여 카르노의 영구기관은 [등온팽창-> 단열팽창-> 등온압축 ->단열압축]의 사이클을 거쳐 초기 상태로 돌아옴.
카르노의 영구기관은 초기 상태에서 시작하여 초기 상태로 되돌아가는 이상기관임.
카르노의 영구기관에 나타난 이러한 가역성 개념은 관성 운동개념과 비교됨.
현실의 운동 중에서 직선 위에서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운동은 없음.
마찬가지로 현실의 과정 중에서 가역적인 과정은 없음.
그러나 현실의 비가역적 변화 대신에 이론적인 가역 변화를 생각할 수 있음.
초기 상태와 최종 상태의 온도 차를 한없이 작아지도록 한다면 이론적으로 초기 상태는 최종상태와 같다고 유추할 수 있음.
이러한 가상적인 가역성은 연속성을 의미하며 미적분을 응용할 수 있게 함.
[414]
클라페이롱(1799-1864)은 카르노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다룸.
클라우지우스는 클라페이롱의 논문을 통해 카르노의 업적을 알게 되었고, 그 가역성은 클라우지우스가 엔트로피개념을 이끌어낸 필수조건이 됨.
클라우지우스는 가역성이 “절대로 도달할 수는 없지만 무한히 접근할 수 있는 한계” 같은 것이며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고찰을 할 때는 이것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도 좋으며, 비록 한계로서 일지라도 이론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씀.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증기기관의 발명은 과학에 빚진 것이 거의 없음.
증기기관은 수준 높은 과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어떻게 보면 단순한 기술이었음.
오히려 증기기관은 과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카르노로부터 시작된 열역학은 증기기관의 연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임.
[441-]
벤저민 톰슨(1753-1824)은 마찰에 의해 운동이 열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실험을 수행함.
그는 대포의 포신을 깎을 때 발생하는 열로 물이 심하게 끓는다는 것을 통해 열은 운동에 존재함을 주장함.(1798)
그러나 그는 운동으로부터 열로의 변환을 수량화하지 못했음.
40년 뒤 제임스 프레스코트 줄(1818-1889)은 운동과 열 사이의 수량화에 성공함.
그의 초기 실험은 기계적 동력의 소모와 열의 발생 사이에 일정한 비율이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줌.
“자연의 위대한 힘은 창조주의 엄명에 의해 영원불멸임에 대하여 만족한다. 기계력이 소모되면 언제나 정확히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열이 얻어지는 것이다.”리고 줄은 말함.(1843)
줄은 카르노의 연구에 주의를 기울임.
줄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실린더에서 증기가 팽창할 때, 실린더 속의 온도가 감소한다. 그리고 감소한 온도에 비례하여 피스톤에 전달되는 기계적 힘이 증가한다. 즉 열의 감소는 힘의 증가와 정확히 상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력은 소멸되지 않으며 단지 다른 형태의 힘으로 변환될 뿐이다.”
이러한 일과 열과의 변환에 대한 사실이 과학적 객관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량화에 성공해야 함.
즉 어느 정도의 열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변환되었는가하는 것이 수량적으로 보여져야 함.
줄은 바로 이러한 수량화에 성공한 것.
도대체 어떻게 그러한 과정을 수량화했을까?
줄은 특별한 장치를 고안함.
물통 속에서 회전하는 물갈퀴를 만들고, 추가 내려가면 물갈퀴가 움직이도록 만듦.
추가 하강하면서 물갈퀴가 움직이고, 물갈퀴가 움직이면서 물과의 마찰로 인해 물의 온도가 상승함.
이 과정에서 추가 한 일과 온도의 상승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일과 열 사이의 수량화에 성공한 것임.
1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높이는데 772파운드의 무게가 1피트 낙하하는 기계력이 필요하다는 것.
줄은 이 실험을 통해 열과 일의 등가성을 보여줌.
즉 열과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 것.
이것은 좁은 의미로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됨.
줄은 실험을 통해 그의 업적을 이루었지만, 마이어(1814-1878)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방법으로 줄과 똑같은 결과를 얻음.
줄이 실험물리학자였다면 마이어는 이론물리학자였던 셈.
실험과 이론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는 증명하지 않고 사용한 전제조건이 받아들일 만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임.
(2024.01.0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