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수선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계속 욕을 하셨다. “아니, 이런 미친 년들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무슨 놈의 봄이 가기 전에 꽃을 본다고, 지금 더워 죽겠는데.” 어머니는 왜 화가 났을까? 욕은 이어졌다. “철도 모르는 것들이 꽃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그 꽃이 봄에 피는 꽃인 줄 아나?”

나는 어머니 친구들이 꽃놀이 가서 찍은 사진을 단체 카톡방에 올린 줄 알았다. 친구들은 놀러 가는데 어머니는 집에서 밭에 거름을 나르고 있으니 화가 날 법도 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친구들은 꽃 그림에 북한 필체로 유치한 문구를 쓴 그림 파일을 단체 카톡방에 올려놓았고, 어머니는 고-연령대 특유의 구린 미감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차라리 관광지의 절경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어머니는 (실제로는 화가 더 났더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화를 덜 냈을지도 모르겠는데, 가뜩이나 짜증이 난 상태에서 너무 구린 것을 보니 주저 없이 화를 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욕은 집에 와서도 이어졌다. “미친 것들이 뭐가 뭔지도 모르고. 우리 집에 핀 꽃이 더 예쁘지. ◯◯아, 저 꽃 이름이 뭐냐?”, “수선화 같은데요?”, “아, 맞다. 수선화.” 어머니는 화단에 핀 수선화를 사진으로 찍어 단체카톡방에 올리고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그래, 4월 15일에 보자 ㅎㅎ” 어머니는 미감을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2023.04.01.)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공무원 가족 무고단을 상대하는 나의 각오

내가 읽은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대충 기억에 얼마 전까지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 임용연령 평균은 47.6세였다. 박사학위를 27살에 받는다고 치면 20년, 35살에 받아도 10여 년의 일시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