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3

보고의 기술

이번 <선배와의 만남>에는 석사학위를 받은 뒤 대기업 연구원이 된 사람이 연사로 왔다. 취업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러한 바깥 세상 이야기가 신기했고 또한 유익했다.

연사는 대기업에서 보고서를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말했다. 5일 중에 이틀 동안 내용을 고민하고 하루 동안 보고서를 쓰고 남은 이틀 동안 파워포인트나 워드를 꾸민다고 했다. 파워포인트나 워드로 꾸미는 것이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의사결정권자들은 보고서 하나를 3분 이상 읽지 않기 때문에 전체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어느 부분이 중요하고 어느 부분을 읽어야 하는지를 표시해두는 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종의 정보전달 기능을 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옛날에 왕이나 황제에게 바치던 보고서는 어떠한 형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이 아무리 조직이 방대하다고 해도 한 나라의 일개 기업인 반면, 조선은 아무리 작은 나라였어도 인구는 5백만 명에서 1천만 명이었고 중앙집권화가 된 국가이니 왕이 문서를 읽어야 하는 부담은 오늘날 대기업 회장이나 최고경영자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 읽는 문서에도 무슨 조치가 있지 않았을까? 중국이라면 어떨까? 먹고 놀았던 명나라 황제들 말고, 청나라의 강희제나 옹정제를 생각해보자. 인구가 3억 명이고 온갖 보고를 황제에게 올렸을 텐데 그걸 소화하려면 문서에 뭔 짓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유럽에서도 문서에 대한 무슨 조치 같은 게 있었을 것 같다.

사학과 교수라면 다른 교수와 합작을 하든 지도학생을 동원하든 따로 돈 주고 사람을 고용하든 해서, 『역사 사례에서 보는 보고의 기술』 같은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사람들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고서를 어떻게 썼는지 등을 국가별・시대별로 잘 정리해서 책으로 내면 수익이 꽤 날 것이다. 책은 책대로 팔고, 기업에서도 강연 요청이 들어올 것이니 한 바퀴 돌고 오면 꽤 짭잘할 것 같다.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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