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로 일하는 수업에서 기말보고서 관련하여 성적 이의신청 하는 학생이 있으면 왜 그 점수가 나왔는지 설명하는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어야 한다. 점수만 알려주면 편할 텐데, 평가 항목이 무엇이고 채점 기준이 무엇이고 그 학생의 기말보고서에서 무엇이 문제여서 감점했는지 등을 일일이 써야 한다. 기말보고서마다 감점 이유가 달라서 학생 한 명당 답변 글을 한 편씩 써야 한다. 딥변 글 한 편은 A4용지로 두세 쪽 분량이다. 수업 시간에 담당 교수가 평가 항목을 안내했지만, 그러한 항목이 있음을 아는 것과 어떻게 글을 써야 채점 기준에 부합하는지 아는 것은 다른 것이라서, 성적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귀찮다.
올해는 기말보고서와 관련하여 성적 이의신청을 한 학생이 네 명이나 되었다. 이전에는 한 명 있을까 말까였다. 한 명만 있어도 귀찮은데 네 명이나 되니 너무 귀찮았다. 한 명씩 전부 답변했는데 내 답변을 받고도 또 질문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러면 또 답변해 주어야 한다. 너무 귀찮다.
윤 아무개 학생은 A0를 받았는데, 예상보다 점수가 낮게 나왔다며 담당 교수에게 문의했다. 담당 교수는 발표/토론 점수는 상위권이지만 A+가 아닌 A0를 받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부분은 기말보고서 성적이라고 답변했다. 내가 채점 기준으로 삼은 기말보고서 평가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주장과 논거가 분명한가?
(2) 논증은 설득력이 있는가?(타당한가?)
(3) 예상되는 반론을 염두에 두었는가?
(4) 표현: 불필요한 전문용어(jargon)나 불분명한 어휘의 사용을 피했는가?
(5) 비문이 없는가?
(6) 문단 구성 및 글의 전반적인 구성은 잘 되었는가?
(7) 기타 감점 (표절, 인용, 참고문헌 등)
각 항목은 A/B/C로 평가하며 A는 0점 감점, B는 1점 감점, C는 2점 감점한다. 총점은 20점이며 이를 100점 만점으로 변환하여 공지한다. 윤 아무개 학생의 기말보고서는 (2), (3), (6), (7)에서 각각 1점씩 감점되어 16점이었고,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80점이었다.
윤 아무개 학생은 다른 여섯 가지 항목은 이해가 가는데 일곱 번째 항목인 기타 감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기타 감점을 왜 도입했는지도 설명했다.
예전에 여섯 가지 기준으로 기말보고서를 채점하다 보니,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 영 아닌데도 항목별로 조금씩 덜 감점되어 실제 글의 수준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이번에 추가한 것이 기타 감점 항목이다. 어떤 항목에서 C를 줄 정도로 문제가 있더라도 기계적으로 채점하다 보면 B를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점수를 부여하는 항목이 여러 개면 기타 감점 항목에서 1점을 감점하여 전체 점수를 보정한다. 이렇게 하니 최종 점수가 담당 교수의 채점 기준에 더 부합하게 되었다.
그런데 윤 아무개 학생이 기타 감점을 문제 삼으며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 또한 제가 이해한 평가 기준에 따르면 (7)번 항목은 표절, 인용, 참고문헌 등 형식적·윤리적 요소에 대한 감점 항목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제 보고서에는 표절이나 인용·참고문헌상의 명시적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2), (3), (6)번 항목에서의 평가를 보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7)번 감점이 이루어진 점은 평가 항목 간 적용 기준의 일관성 측면에서 의문이 들어 이렇게 문의드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교님께서 제 보고서의 전반적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셨다는 점 자체는 이해하고 있으며, (2), (3), (6)번 항목에서 B를 부여하신 판단 역시 존중합니다. 다만 특정 항목의 평가 강도를 조절하기 위한 보정이 다른 독립적인 평가 항목의 감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제가 (7)번 항목에서 감점을 받을 만한 구체적인 사유(예: 인용 방식, 참고문헌 구성 등)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유가 없다면, 해당 감점이 재검토될 수 있는지도 함께 여쭙고 싶습니다.
일관성? 나는 점심 때 이과두주 한 병 마시고 채점하다가 저녁 때 술이 깨기 전에 한 병 더 마실 정도로 채점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내 할 일도 못 하고 있는데 무가치한 성적 이의신청에 일일이 답변을 해주자니 짜증이 났다. 그래도 맡은 역할이 있으니 해당 학생의 기말보고서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다시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정리하자면, 일관되게 감점하여 항목 (2), (3), (6)에 각각 2점씩 감점하고 항목(7)에서 1점 감점하여 20점 만점에 13점, 100점 만점에 65점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80점으로 채점하여 일관성의 의문을 품게 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후, 나에게 기말보고서 채점에 관한 답변을 받은 김 아무개 학생이 항목(7)과 관련하여 질문했다. 또 짜증이 났다. 보정 같은 이야기를 하면 또 문의가 들어와 또 답변해야 할 테니 아예 인용 문제를 근거로 답변했다. 나는 학생이 실제로 존재하는 문헌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잘못 인용했음을 지적했다. 인용한 여섯 문헌 중 네 문헌은 인용이 잘못되어 있었는데, 제시한 쪽수의 내용과 실제 문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 여섯 편 중 한 편은 읽은 적이 있지만 다섯 편은 처음 본 문헌이라 인공지능을 이용해 분석한 뒤 잘못 인용한 부분을 찾아 답변했다. 귀찮고 짜증났지만, 그래도 학생이 “답변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회신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윤 아무개 이 놈은 13점 받아 마땅한 기말보고서를 쓰고도 A+가 아니라면서 성적 이의신청을 해서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분했다. 13점을 주었어야 했다. 그 학생의 기말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글이 개판 났으니 참고 문헌이라고 정상일 것 같지는 않았다. 참고 문헌으로 제시한 것은 다섯 개였는데, 그 중 두 개가 가짜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1) Goldman Sachs (2023), “The Potentially Large Effects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Economic Growth”, Global Economics Analyst, pp.1-20
2)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2016),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서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3) 박은빈(2016), 〈로크의 소유이론과 지적재산의 이해〉,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4) 이진우(2017),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조건: 아렌트의 ‘활동적 삶’을 중심으로〉, 《철학》 133권, pp.1-26.
5) 리프킨, 제러미(2014), 안진환 역, 《한계비용 제로 사회》, 서울: 민음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2016년에 출간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없다. 다니엘 라벤토스가 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이한주・이재명 옮김)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쓴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가 있을 뿐이다. 이진우 교수가 썼다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조건: 아렌트의 ‘활동적 삶’을 중심으로」라는 논문도 없다. 《철학》 133권(2017)에 실린 논문 중에는 이진우 교수가 쓴 논문 자체가 없다. 같은 시기 다른 학술지에도 그런 제목의 논문이 실린 적이 없다.
나는 윤 아무개 학생에게 참고 문헌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메일을 보내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아마도 참고 문헌 표기할 때 실수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문헌에서 어떤 부분을 인용했는지 관련 자료를 최대한 빨리 보내주기 바랍니다. 자칫 잘못하면 연구윤리 위반으로 징계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 메일을 확인하는 즉시, 최대한 빨리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책은 겉면을 촬영하고 참고한 부분 한두 쪽만 스캔하여 보내주시고, 논문은 굳이 출력할 필요 없이 다운받은 논문 PDF 파일을 보내고 어느 부분을 참고했는지 쪽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1월 1일에 보냈는데 그다음 날에도 학생의 답장이 없었다. 이메일을 받자마자 난리가 나야 할 텐데, 그 학생이 평온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학교 etL에 들어가 그 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니 문자를 보는 즉시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조교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문자로 급히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미처 메일을 확인 못해, 회신이 늦은 점 죄송합니다..! 조교님께서 지적해주신 참고 문헌 표기 문제를 확인하였으며, 제 불찰로 인해 정교하지 못한 결과물을 제출하게 되어 당황스럽고 죄송합니다.
문의하신 두 가지 문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명 자료를 제출합니다.
2)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2016),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서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의 개념적 정의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의 공식 자료(https://basicincomekorea.org/all-about-bi_definition/)를 참고하였습니다. 해당 단체에서 정리한 정의를 인용하며 출처를 기재하던 중, 웹페이지에 명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참고 문헌 양식에 맞춰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서적 정보로 오기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려다 오히려 정확한 출처 표기 원칙을 어기게 된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4) 이진우(2017),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조건: 아렌트의 ‘활동적 삶’을 중심으로〉, 《철학》 133권, pp.1-26.
다음으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참고한 논문 [박병준. (2014). 한나 아렌트의 인간관 - 『인간의 조건』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적 탐구 -. 철학논집, 38, 9-38.]이 생성형AI를 사용하여 참고문헌 양식을 맞추는 과정에서 잘못 기입된 것 같습니다. 옮긴이 이진우인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성형 AI를 이용해 알아본 뒤, 관련된 논문들 3개의 해석을 생성형 AI에 넣어 알아보는 과정에서 표기에 실수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박병준. (2014). 한나 아렌트의 인간관 - 『인간의 조건』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적 탐구 -. 철학논집, 38, 9-38.] 논문의 19쪽에서 인간의 층위 중 노동, 22쪽에서 작업, 15쪽에서 행위에 관한 내용을 요약해 인용했습니다. 첨부해 드리는 PDF 파일은 제가 실제로 참고한 박병준 교수님의 논문입니다. AI 도구 활용에 있어 검증을 소홀히 하여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상황을 만든 점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출처 표기가 가지는 엄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고의적인 정보 위조는 결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부실한 참고 문헌 목록을 제출한 제 불찰이 큽니다. 바쁘신 연초에 번거로움을 끼쳐드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마도 학생의 답변은 거짓말일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작업하다가 이런 오류가 났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래도 그 학생이 내가 보낸 문자를 받고 화들짝 놀라 거짓말을 지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났다.
내가 대학에서 조교 일을 여러 번 하고, 강사 일을 두 번 하면서,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주로 어떻게 해야 노동력을 덜 들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였다, 하지만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빳다를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한테 무슨 인간됨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범죄를 저지르면 깔끔하게 감옥에 가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 참고 문헌 위조를 잡아내면서 ‘어쩌면 이런 것이 교육하는 맛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당 수업의 조교일 뿐이라서 연구윤리 위반을 잡아내는 것 말고는 별도의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다. 성적 처리도 거의 끝난 마당이라, 담당 교수에게 학생의 참고문헌 위조를 잡아냈음을 알리기는 했지만 딱히 문제 삼지는 말자고 했다. 담당 교수도 이번 일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수업이 내 수업이었다면 어땠을까? 강사라면 아무래도 몸을 사리게 되다 보니 굳이 문제 삼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정년을 보장받은 정교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해당 학생의 점수를 A0에서 D+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당 사례를 학기 초마다 언급하며 “성적 이의신청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동안 내가 교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교수가 되면 더 단가 높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경우에도, 지식 전달만 잘 하면 됐지, 그 이외의 다른 측면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며 교육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참된 교육을 하고 싶다. 인문대 교양수업이라고 해보았자 글이나 대충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돌려서 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안일하게 생각한 공대 학생에게 인문학의 쓴맛을 보여주고, 철학의 불벼락을 내리고, 연구윤리와 관련하여 학부 졸업할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참교육이 아닐까? 교육자가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교수가 될 수 있을까?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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