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에 전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전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가니 책은 없고 서류 상자만 몇 개 있었다. 책은 이사 업체를 불러서 모두 옮겼지만 업체를 부를 때까지 옮길 서류와 파쇄할 서류를 분류하지 못해서 서류를 옮기지 못한 것이다. 선생님은 작은 상자를 못 구해서 큰 상자에 서류를 넣었더니 두 사람이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워졌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평소에 이런 일을 안 해보신 것 같다. 나는 서류 상자를 선생님 차로 옮기는 일과 몇몇 서류를 파쇄하는 일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6동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할 때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요즈음도 화성에서 통학을 하나?” 나는 기숙사 리모델링하느라 1월 한 달 간 찜질방과 집을 오가며 지내다 2월부터 학부 동창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매일 찜질방에서 지내면 몸이 상하고 매일 통학하면 하루에 통학 시간만 네 시간이 걸린다. 나는 화성에서 서울로 등교한 날은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다음 화성 집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해서 4일 동안 연구실에서 지내는 생활을 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학부 동창은 기숙사 리모델링 끝날 때까지 한 달 간 같이 지내자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선생님 석사 과정 때의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는 학교가 황량했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도 많고 나무도 많지만 당시는 혜화동에 있던 학교를 옮긴지 얼마 안 되어서 텅 빈 골프장에 건물 몇 개 지어놓고 묘목 몇 그루 심어놓은 정도였다고 한다. 강남 개발 이전인데다 골프장은 대중교통과 별로 상관없는 곳이라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친구들하고 막걸리 한 잔 하려고 해도 한참을 걸어서 나가야 했다. 그렇게 걸어서 학교를 나가는데 그 때 그렇게 눈이 왔었다고 하셨다. 6동에서 내려와 3동을 지날 때 선생님은 3동을 가리켰다. 3동 4층에 있는 연구실을 네 명이 같이 썼다고 한다. 마침 3동 4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석사과정 때 선생님은 수유에 사셨다. 학교에 오는 데만 2시간가량 걸렸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책상을 붙여서 잠을 잘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 때는 고생을 해도 그게 고생인 줄 모를 때였지.” 선생님은 그 옛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러 갈 때 눈이 온 것처럼 눈이 와서이기도 하고 마침 내 숙소 이야기도 들어서 예전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도 학생으로 다녔던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마치고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든 감회도 있었을 것이다.
교수 식당에서 내가 물을 따르려고 하니 선생님은 “아니야. 내가 따르지”라고 말씀하셨다. 컵에 물을 따라 주시면서 “고생한 사람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지”라고 하셨다.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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