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1

동료 대학원생의 협박

     

20대 남성들이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을 추동한다고 한다.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권이 여성을 우대하네, 역차별이네 하면서 20대 남성들이 찡찡거린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찡찡거리는지, 자영업자들 어렵다는 기사보다 20대 남성들이 떼쓰는 기사가 더 많이 보인다. 나는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짤막하게 한 마디 썼다. 해당 게시글을 지워서 원문에 어떻게 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긴 글이 아니어서 해당 내용을 웬만큼 기억한다. 아마도 원문은 다음 글과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며느리랑 안 살 거면서 드라마 보고 요즘 며느리 욕하는 시어머니나, 결혼해도 시어머니와 안 살 것이고 주변에도 시집살이 하는 사람도 없으면서 게시판 글 보고 시어머니 욕하는 미혼 여성이나, 대화할 친한 이성도 없으면서 여성에게 피해본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이나 한심하기는 비슷하다. 그런데 예비 시어머니나 예비 며느리는 사회 문제를 안 일으키는데 20대 남성은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하여간 20대 남성은 요주의 대상이다.”
  
이 글을 쓴 지 이틀 쯤 지나서였나, 게시글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댓글의 내용이 꽤나 공격적이었고 표현도 상당히 거칠었다. 해당 게시글을 지우는 바람에 댓글도 지워졌는데 주요 내용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i) 20대가 요주의 대상이라니 나도 몇 년 전에 20대였는데 나도 요주의 대상이었는가? 글쓰기 조교 하는 수업의 학생들도 대부분 20대일 텐데 그 학생들도 요주의 대상인가? 이런 글을 쓰는 당신은 일베와 무엇이 다른가?
(ii) 예전에 연구실에 있을 때도 한남 한남 거리길래 미쳤나 했는데 당신은 바뀐 것이 없다.
(iii) 제발 정신 차리고 헛소리 하고 다니지 마라.
  
지나가던 사람이 단 댓글이었다면 차단하든 신고하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댓글은 내가 철학과 석사 과정 때 연구실에서 몇 년 간 같이 지냈던 동료 대학원생이 쓴 것이었다. 그 댓글을 처음 보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의아했다. 내가 알기로, 그 사람은 남에게 싫은 말도 거의 하지 않고 판단력도 믿을만한데, 왜 그런 댓글을 달았을까? 내가 글을 잘못 써서 그 사람이 그런 것인가? 나는 내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판단력을 믿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문제점이 있기는 있나 보다 싶어서 일단 게시글을 지웠다. 그 글이 그렇게 아름답거나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게시글을 지울 때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게시글을 지우니 댓글에 답변할 수 없었다. 원래 게시글의 취지를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 사람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어쨌든 그 당시는 나름대로 해명이라고 보낸 것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30대였던 것도 아니고 몇 년 전까지 20대 한국 남성이었고 내가 대학원에 들어올 때도 20대였다. 20대 남성이 요주의 대상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 지탄받을 언사인가? 흑인은 흑인끼리 니그로라고 하면 안 되나? 전남 토박이끼리 홍어라고 하면 안 되나? 그런데 요주의 대상이라는 단어는 멸칭도 아닌 것 같다. 내가 20대 남성들을 도청하거나 감청하거나 미행한 것도 아니다. 고려대 우유 급식남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자 어떤 고려대 졸업생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고려대 폐지를 주장해왔다는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내가 고려대를 안 나와서 남의 학교가 없어지든 말든 상관없어서가 아니라 고려대 사람들끼리 그러는 것이라 그렇다. 그리고 남자가 사고를 주로 20대에 치지 70대에 치나? 20대 남성이 사고 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이 하면 안 되나? 나는 20대 때 여성이었나?
  
내가 석사 과정 때 연구실에서 한남 한남 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나는 줄임말 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줄임말을 덜 쓰는 편이다. 로마자 약자는 멋있어 보이는데 한국어 단어를 줄이면 대부분 어감이 개떡 같아져서 그런 것이다. 어쩌면 “이러니까 한남 소리를 듣지” 하는 식의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메갈리아나 워마드 같은 것에 동조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근본 없는 단체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축적된 조직적 역량도 없어 보이는 데다 전문 지식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모여서 무질서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 보여서, 나는 그들을 불신한다. 웬만하면 한남이라는 단어를 안 썼을 것 같은데, 썼다고 하더라도 아마 당시 유행어라서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만한 것이었다면 그 사람은 당시 나보고 왜 그런 말을 사용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내 뒷자리에 앉았으니 말이다.
  
나는 짤막한 해명을 하고 나서 “하여간 정신 차리고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겠습니다”라고 썼다. 나이 먹고 정신 못 차리고 사는 것도 맞고, 헛소리 하고 다니는 것도 맞으니까 그렇게 썼다. 혹시나 그 사람이 순간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서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나중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웃으면서 “하여간 정신 차리고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내가 한 변명이 모두 말이 안 되니 원문 내용까지 포함해서 철학과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쓴 글은 이틀 정도 게시되었으니 볼 사람은 다 봤을 것이다. 그걸 철학과 사람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협박조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내가 게시글을 지우고 발뺌할까봐 캡쳐까지 해놓았나 보다. 그런데 이게 대단한 폭로이기나 한 것인가.
 
 
 
 
그 사람의 반응이 하도 강경해서, 나는 내가 이미 맛이 가서 반-사회적인 언사를 하고도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평소 교류하는 사람도 매우 적고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이 서른다섯 살이 되었으니 어쩌면 나는 맛이 갔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분야에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몇 사람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이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약간 안심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화가 났으며 왜 나에게 협박조로 말을 했는가? 교수 자리를 투고 암투를 벌이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협박하면서 금품을 요구해도 협박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치 자신이 공익제보자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 왜 그랬을까? 나는 내 대학원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석사 과정 입학 이후로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와 갈등을 빚은 사람은 두 명이다. 한 명은 나에게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뻔히 보이는 수작을 걸려고 해서 내가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그 한 마디가 그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인 것이어서 하지 않았다. 괜히 좀스러운 사람 하나 때문에 악명을 쌓기 싫어서 참았다. 다른 한 사람은 나에게 이상 행동을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계절이 바뀔 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라서 그 때도 참았다. 두 사람 말고는 대학원 다니면서 나와 크게 갈등을 빚은 사람은 없었고 혹여나 내가 잘못하면 바로 사과했다. 다들 나에게 잘 해주어서 아무런 불만 없이 대학원을 잘 다녔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못된 짓을 해서 개인적인 억하심정이 있으면 밤중에 집에 갈 때 각목으로 몇 대 때리지 왜 그런 협박을 했을까?
  
그 사람은 내가 한 말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욕먹을 일이 있으면 욕먹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맞을 일이면 몇 대 맞을 생각이다. 설마 죽으라고는 안 하겠지. 철학과 사람들에게 해당 게시글과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치졸한 협박을 받느니, 철학과든 협동과정이든 어디든 한국어 사용자가 다 보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공개하기로 했다. 게시글과 메시지를 영어로 번역하고 외국인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싶지만 영어를 못 해서 그건 안 하기로 했다. 삭제한 게시글을 복원하려고 두 시간 정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내가 컴퓨터를 못 해서인지 잘 안 된다. 게시글이 복원되어야 게시글에 달린 그 댓글도 복원될 텐데 어쩔 수 없다.
  
나는 대학원 다니면서 필기가 필요한 사람한테 필기도 주고 발제문이 필요한 사람한테 발제문도 주고 돈은 없어서 못 주고, 하여간 별로 나쁜 짓은 안 하고 산 것 같다. 남을 등쳐먹은 적도 없고 분란을 일으킨 적도 없는 것 같다. 대학원 생활 중 위기에 처한 사람을 몇 명 구하기도 있다. 내 언행이 경망스러운 건 나도 아는데, 그리고 가끔 상식에서 약간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반-사회적인 언행을 하고 산 것 같지는 않다. 아닌가? 아닐 수도 있다. 잘못을 해놓고도 잘못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나에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내 잘못이 있는지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기록하고 메시지도 캡쳐해놓기로 했다.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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