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4

역사학을 창의성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난 학기에 경제학과 학부 수업을 들었다. 평소에 창의성을 강조하시던 선생님은, 수강자 중 희망자에 한하여 방학 때 모여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지자고 학기 말에 제안하셨다. 선생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여러모로 신경써주셨기 때문에, 성의라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여 나도 발표하기로 했다.
  
발표 주제와 형식은 모두 자유였다. 나는 발표 시간을 고려하여 두 가지만 발표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로버트 루카스의 제자인 만큼 인적 자원 축적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첫 번째 발표는 학문 간 교류에 관한 것이다. 학문 간 교류가 중요하다면서 교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봤자 비용만 많이 들고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니 대학원생에게 커피 쿠폰을 주면서 다른 과 대학원생을 만나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내용이다.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것이다. 두 번째 발표는 역사 교양교육 방식을 바꾸면 같은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한국의 역사 교양교육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기르는 것과 무관하다고 본다. 역사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교육에서 역사나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사람들이 교양교육 시장으로 진입한 경우다. 설민석이나 최진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수험용 역사교육의 연장선에서 단순 암기 위주의 정보를 제공하며 빈약한 내용을 신파나 애국주의로 만회한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역사 전공자들이 대중 교양시장에 진입한 경우다. 이들은 사교육 강사 출신들과 달리 비교적 전문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교양교육도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둘의 차이는 신파를 섞은 파편적인 정보 전달이냐, 조금 더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 전달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나는 단순히 교육 방식만 바꾸어도 학생들의 교육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창의성을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에 맞는 역사 교양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역사에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널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문제 해결의 원리를 탐구하게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므로, 역사 교양교육도 일종의 연습 문제 풀이처럼 구성할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가 연습문제로 주어진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지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경 지식을 부가적으로 습득할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연습 문제는 다음과 같다.
  
    문제(1):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를 어떻게 측정했는가?
    문제(2): 조충은 코끼리의 무게를 어떻게 쟀는가?
    문제(3):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항해했는가?
    문제(4): 동아시아는 왜 금속활자를 잘 활용하지 않았는가?
    문제(5): 모스는 모스 부호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가?
  
문제(3)을 예로 들어보자. 콜럼버스는 왜 신대륙으로 갔는가? 중교등학교 때 다들 배웠다. 향료 등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오스만 투르크가 길을 막고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등등. 그런데 당연하다는 것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옛날부터 널리 알려졌다.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해서 서쪽으로 안 간 게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구 둘레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측정했다. 이걸 설명하면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방법을 학생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면, 콜럼버스가 살던 당대에도 배운 사람들은 인도에 가려고 서쪽으로 가면 한참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당대 항해술을 고려하면 서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지구가 네모가 아니어도 미친 짓이다. 이러면서 당대 항해술이 어떤 건지 선박이 어떻고 등등을 설명한다. 이렇게 죽 설명하면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게 이상하다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게 된다.
  
문제(5)는 모스가 모수 부호의 수서를 정할 때 알파벳별 사용 빈도를 어떻게 알아냈냐는 것이다. 모스 부호는 이진법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길게 누르는 것이 1, 짧게 끊는 것이 0이다. 모스 부호로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하려면 사용 빈도가 높은 알파벳에 최대한 작은 수를 부여하고 사용 빈도가 낮은 알파벳에 비교적 큰 수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19세기 기술로 알파벳별 사용 빈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는 오늘날보다 기술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어떻게 빅 데이터를 활용했는지 추론하는 문제이다.
  
내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역사학을 창의성 교육에 활용하자는 내 발표를 들으니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그 선생님은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으셨는데, 미국 대학원에 한국 대학원과 다른 특별한 게 없는데도 학생들이 잘 해서 신기했다고 한다. 문제 풀고 시험 보는 게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데 미국 학생들이 훨씬 잘 하더라는 것이다. 학부에는 뭐 다른 게 있나 싶었는데, 조교하면서 봐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문제 풀고 시험 보고 똑같았다고 한다. 두 나라의 차이는 초등학교에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딸은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숙제로 이런 것을 내주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에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왜 그랬는지 조사해오시오.” 그러면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으면서 과제를 하는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하루 종일 암기만 시키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암기한 것을 복습하는 것을 숙제로 내주는데 미국 초등학교는 어려서부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서울대에서 누가 A+를 받는가> 류의 논의는 혹세무민에 불과한 것 같다.
  
  
* 뱀발(1) 
  
내 발표가 다 끝나고 나서 선생님은 혹시 사교육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여기서 말하는 사교육은 입시 관련 사교육이 아니라 교양교육과 관련된 사교육이다. 선생님은 지금 발표한 것 같은 내용으로 사교육을 하면 설민석이나 최진기보다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연구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이런 걸 썩히면 아까우니 유튜브라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러면 지도교수님이 걱정하시니 아직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몇 번을 권하셨고 나도 몇 번 사양했다. 그런데 내가 그 선생님의 지도 학생이 아니어서 편하게 말씀하신 것이지 그 선생님 지도 학생 중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있었으면 그 선생님은 골치를 썩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아, 아쉽네. 경거망동이라... 그래요, 빨리 박사학위 받았으면 좋겠네요. 수고했습니다.”
  
  
* 뱀발(2)
  
- 문제3의 답: 콜럼버스는 오차가 상당히 큰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지도에 근거해서 인도 항해를 하려고 했다.
  
- 문제5의 답: 조수를 시켜서 근처 출판사, 인쇄소, 신문사의 알파벳별 활자 개수 순위를 알아보도록 했다.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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