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8

봉사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학생 인성에 도움이 될까

   
학생부종합전형 중에는 어렵고 힘든 봉사를 하거나 봉사활동 시간이 많을수록 입시에 도움이 되는 전형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한 전형이 학생들의 인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 그런 활동 없이 시험 준비만 하는 것보다 학생 인성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독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법으로 정해진 의무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게 하는 경우와 봉사 시간이나 내용에 비례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 경우를 비교해보자. 둘 중 어느 것이 나은가. 얼핏 보면 후자가 좋은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시간 채우려고 억지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봉사 활동 시간이나 내용, 강도 등을 정할 수 있으니 학생의 자율성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정해진 의무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경우다. 편한 봉사든 힘든 봉사든 어떤 봉사를 선택할지는 학생의 자유이며, 구체적인 봉사 내용은 기록에 남지 않고 추가 봉사 시간도 기록에 남지 않으며 오직 봉사 시간만 기록에 남는다고 하자. 봉사를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편한 봉사를 할 것이고 봉사를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힘든 봉사를 할 것이다. 편한 봉사를 한 사람은 제도의 원래 취지와 상관없이 그냥 노동을 한 것이지만 힘든 봉사를 한 사람은 원래의 취지대로 봉사를 한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봉사 활동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일부 학생에게는 원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이번에는, 봉사 시간이나 내용에 비례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도 편한 봉사와 힘든 봉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작은 보답을 원하는 사람은 편한 봉사를 할 것이고 큰 보답을 원하는 사람은 힘든 봉사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답을 바라는 만큼 봉사하는 것이 어떻게 봉사인가. 그건 그냥 노동이다. 이 경우는, 편한 봉사를 하는 학생이든 힘든 봉사를 하는 학생이든 어느 학생도 봉사를 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대학 입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 노동을 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자신이 원해서 힘든 봉사를 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대학 입학 제도가 필요한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착한 학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학생에게도 봉사 시간이나 강도에 비례하여 대학 입학에 도움을 주는 제도가 해당 학생의 인성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봉사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 학생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자.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에 나오는 보육원 실험 사례를 보자. 보육원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아이를 찾으러 와야 한다. 부모들이 늦게 오면 그만큼 보육 교사들의 노동 시간이 길어진다. 부모들이 제 시간에 보육원에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스라엘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떤 유인에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경제학자들이 맨 처음 생각한 것은 부모들이 지각할 때 벌금을 매기는 것이었다. 인간은 경제적 유인에 따라 행동하니 벌금을 내기 싫어서 지각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벌금제가 시행되자 오히려 부모들의 지각 횟수와 지각 시간이 예전보다 늘어났다. 왜 그랬을까? 벌금 시행 이전에는 부모들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지각하지 않으려고 했고 지각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와서 자기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벌금 제도가 시행되자 늦더라도 벌금만 내면 되니까 아예 대놓고 늦게 오기 시작했다.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벌금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례는 금전적 유인 구조가 도덕적 의무감을 밀어내는 일종의 제도적 밀어내기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제도적 밀어내기 효과가 학생부종합전형에는 예외일까?
   
봉사를 하면 한 것이지 남을 보여주려고 일일이 기록한다는 것은 너무 좀스럽다. 뇌물 상납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하면서 남 보여주려고 그렇게 기록을 남긴다는 건 너무 이상하다. 학생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은 일인가. 착하지 않은 학생이 억지로 봉사활동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할 뿐 아니라 착한 학생들의 인성에 대학 입학 제도가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효자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부모가 아프면 꼭 자기 무명지 한 마디를 잘라 부모에게 피를 먹인다. 굼벵이나 지렁이, 두더지를 달여서 먹이지 않고 굳이 자기 피를 먹이는 것부터 이상한데 일단 먹이면 꼭 자기 손가락을 자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해놓고서 왜 손가락을 자르는가. 손에 깊은 상처만 내도 피는 충분히 피가 많이 나오는데 왜 그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깊은 상처는 아물면 티가 안 나지만 잘린 손가락을 다시는 나지 않아 티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가 효자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동네에서 효자 소리 듣고 벼슬을 얻는다. 조선에 엽기적인 효자와 열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국가에서 그러한 엽기적인 행실을 미덕으로 장려한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도덕을 외면화해서 조선이 도덕적인 사회가 되었나.
  
1970년대에 학생부종합전형이 있고 유신 반대 투쟁을 하는 것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었다면, 노회찬의 경기고 동창 황교안은 목숨 걸고 유신 반대 투쟁을 하면서 도망 다니는 틈틈이 학교생활기록부에 자신의 투쟁 이력을 적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회찬은 일종의 부끄러움 때문에 학생부에 자기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고 스펙이 모자라서 수시으로는 대학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 뱀발
  
대학 입시에 학생의 가치관이나 인성이 반영되어야 하고 그래서 자기소개서나 에세이에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남이 쓴 글을 몇 줄 읽으면 그 사람의 인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가. 인성 타령 그만 하고 범죄 저지른 것이나 잘 걸러내면 좋겠다. 가치관이나 도덕이나 인성 같은 것들은 최소 기준에 머물러야 한다. 자기소개서나 에세이로 가치관이나 인성을 보겠다는 것은 사기 치라고 멍석 깔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하고 사기꾼하고 거짓말 대결로 붙으면 착한 사람은 사기꾼을 이길 수 없다. 사기꾼이 마음먹고 사기를 치겠다는데 그걸 순진한 사람들이 무슨 수로 이기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차 뒷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학부 후배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라고 사기꾼이 말했다.”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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