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분석철학 선생님들하고 대륙철학 선생님들을 싸움 붙여서 매체의 관심을 빼앗고 팝콘을 파는 구상을 했는데, 대륙철학 선생님을 섭외하기 어려우면 분석철학 선생님들끼리 싸움 붙여도 될 것 같다. 비-전공자들이 보아도 재미있을 만한 싸움 소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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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비유를 들어 필자의 생각을 설명해 보자. 윤리학 전공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가령, 기업윤리를 연구할지 아니면 생명윤리를 연구할지 그도 아니면 성윤리를 연구할지는 오직 윤리학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사 윤리라는 영역에서 윤리학자들이 전문가라 인정하더라도(이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지니고 있지만) 그 전문성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도덕에 대해서 반성적 사고를 통해 윤리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기업윤리를 육성하라고 말하든지 혹은 생명윤리를 육성하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기업윤리에 대한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고 전쟁이 빈번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전쟁윤리에 대한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윤리학 전공자들의 조언 없이는 그런 지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먹물의 오만 다름 아니다.
- 최성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과 전문가의 오만”
도덕의 문제도 ‘도덕 전문가’가 따로 있다. 도덕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윤리학자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덕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도덕 문제에 대해서는 개나 소나 발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과학자는 생명의료윤리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수 있을 뿐, ‘적합한’ 전문가의 발언은 아니다. 생명과학자는 생명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이지만 윤리・도덕 문제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는 도덕에 관한 발언을 자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가 도덕에 관한 ‘적합한 권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는 ‘그 종교의 도덕’에는 전문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따라야 할 도덕의 전문가는 아니다.
- 최훈, 『변호사 논증법』, 136-137쪽.
* 참고 문헌
최성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과 전문가의 오만”, <교수신문>, 2017.06.09.
최훈, 『변호사 논증법』 (2010, 웅진지식하우스).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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