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9

대학 글쓰기 교육을 망치는 창의성 타령



대학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은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고 쓸데없는 과제를 하게 만들 뿐이다.

글쓰기 교재부터 문제가 있다. 대학교 글쓰기 교재를 보면 학교만 다르지 어느 학교나 글쓰기 교재는 다 비슷하다. 온갖 잡다한 글쓰기 방법이 다 들어있다. 수필 쓰는 법, 감상문 쓰는 법, 설명문 쓰는 법, 논설문 쓰는 법, 기사 쓰는 법, 이력서 쓰는 법, 온갖 글을 쓰는 법을 소개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딱히 글 쓰는 데 도움 될 내용이 없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서 일단 되는대로 교재에 다 때려 넣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대학에서의 글쓰기는 책이나 논문을 읽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시급한 것은 책이나 논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며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것인데, 대학 글쓰기 교재에는 엉뚱한 것이나 실려 있으며 그조차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글쓰기 수업에서 부과하는 과제도 문제가 있다. 흔히 내주는 과제는 서평인데, 신입생들한테 서평 과제를 내주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서평은 책을 평가하는 것이라 배경 지식도 있어야 하고 분석 능력도 있어야 하는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이 무슨 수로 책을 평가할 것인가? 서평할 책을 잘못 골라주는 경우도 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들은 글쓰기 수업에서 교수는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법』을 읽고 서평을 써오라고 과제를 내주었다. 논문은 구경한 적도 없고 보고서도 써본 일이 없는데 『논문 잘 쓰는 법』을 읽고 서평을 쓰라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 강사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고 과제를 내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대학들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수업 개발하는 데 돈 들고 강사 채용하는 데 돈 들고 조교 쓰는 데 돈 들고 하여간 뭐만 했다고 하면 돈이 드는데, 돈이 거저 나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인데,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학교들은 요즈음 시대에는 창의성이 중요하다면서 글쓰기 수업에서 온갖 잡다한 것을 하게 만드는 바람에 결국 아무 것도 못 하게 만든다.

창의성 있으면 좋은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왜 글쓰기 수업에서 찾으라는 것인가? 그런 글쓰기 수업을 하려면 한 강좌당 학생 수가 열 명 이내여야 하고 해당 수업의 강사나 교수는 글쓰기 주제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각 과마다 글쓰기 수업을 개설하고 해당 학과의 교수나 강사가 그 학문의 주제로 글쓰기를 가르치면 해결된다. 그렇게 하면 좋은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그렇게 글쓰기 교육을 하는 학교는 없다. 현재 대학 글쓰기 수업은 한 강좌에 여러 학과 학생들을 몇십 명 때려 넣고, 특정 학과(주로 국문과)의 강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대 학생들의 공학적 창의성을 발휘해봐야 글쓰기 강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글을 제대로 봐 줄 수 없다.

현실이 이렇게 때문에, 글쓰기 수업은, 학생이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수업이 아니라 좋은 생각을 하는 학생이 글 쓰는 솜씨가 부족해서 그 생각을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수업이어야 한다. 글의 문제를 내용의 문제와 형식의 문제로 구분한다면 현재 글쓰기 수업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치는 형식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글로 옮기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해를 잘한 것을 최대한 잘 전달되게 글을 쓰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적은 인력으로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요약문을 많이 쓰게 하는 것이다. 여러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골라서 그 글을 요약하게 하는 것이다. 강사가 고전이나 고전에 가까운 글 중 하나를 고르고 학생들에게 수업하기 전에 좋은 글을 읽어오라고 한다. 수업 중에는 글 내용에 대해 토론하게 하면서 이해한 내용을 확인하고 오해한 내용을 파악한다. 그리고 과제로는 그 글을 요약하게 한다. 과제를 첨삭하면서 문장을 어떻게 쓸지, 문단을 어떻게 쓸지 지도하면 된다. 창의력 같은 것은 다른 수업에서 기르든가 말든가 하면 된다.

요약문 쓰기를 할 때의 이점은 여러 가지다. 좋은 글을 여러 번 읽게 할 수 있고, 그 글이 왜 좋은 글인지 파악하면서 좋은 글이 어떤 글인지 생각해볼 수 있고, 요약 대상이 되는 글이 하나니까 강사나 조교가 첨삭할 때 노동량도 줄어든다. 요약문 쓰기에는 이런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데 내가 알기로 글쓰기 수업에서 요약문 쓰기를 주로 하는 학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다양한 주제를 주고 아무 글이나 다양하게 막 쓰게 해서 결국은 제대로 지도를 못 하는 만드는 학교는 많이 알고 있다. 이게 다 그놈의 창의성 타령 때문이다. 사람을 많이 쓰든지 아니면 돈이라도 많이 주지,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서 죽도 밥도 안 되게 무슨 놈의 창의성 타령인가 모르겠다.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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