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6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정책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참여한 과학기술학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위원들의 의견이 내인설과 외인설로 나뉘자 위원회에서는 과학철학자를 모셔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양측 모두 그 의견에 찬성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실행되지 않았고 결국 두 가지 결론을 모두 담은 종합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 리처드 파인만 같은 학자가 있었으면 합의된 결론을 도출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양측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인만은 챌린저호 폭발사고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청문회에서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이 고체추진로켓의 설계 결함임을 설명할 때, 파인만은 고무링이 낮은 온도에서 탄성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음물에 고무링을 넣었고, 그 장면은 미국에 생중계되었다. 파인만의 직관적인 설명은 권위 있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나는 옆에 있던 과학사 전공자한테 “파인만 같은 사람이 위원회에 참여했으면 과학철학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파인만이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파인만이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했는지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평소 파인만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러한 말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과학사 전공자는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선생님의 말을 인용했다. “과학자에게 과학철학이 도움이 안 된다면 과학사는 더 도움이 안 된다. 과학철학이 현재 살아있는 새들을 연구하는 조류학자라면 과학사는 고생물학자이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선생님을 모셔오려고 했다는 과학기술학 선생님 앞에서, 과학철학 하는 사람 불러봐야 소용없다는 과학철학 전공자와 과학사는 더 쓸모없다는 과학사 전공자가 누가 누가 더 쓸모없는지 경쟁을 벌였다. 그 때 동양과학사 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보셨다. “과학정책은 어떤가요?” 과학정책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과학정책은 새총으로 새를 쏩니다.”

여기서 새총으로 새를 쏜다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다. 하나는 날아가는 새를 새총으로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새를 새총에 담아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 중에는 과학정책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으며, 적어도 과학정책 하는 사람을 적으로는 만들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깔려있다고 한다.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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