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ward Grant (1997), “When Did Modern Science Begin?”, The American Scholar, 66(1): 105-113. ]
그랜트는 근대 과학의 기원을 중세 서유럽에서 찾음.
근대 과학의 시작을 서유럽만이 갖는 특수성에 기반하여 설명하려고 함.
이슬람이나 중국이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이루었지만 서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과학이 제도화되지 못했음을 주장하며 서유럽에서만 과학이 제도화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자 함.
여기서 그랜트가 말하는 중세의 과학은 수학과 물리학에 기반을 둔 정밀과학(exact science)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및 논리학에 기반을 둔 자연철학으로 나뉨.
그랜트는 대대적인 고대 문헌 번역작업이 일어난 1175년부터 1500년까지를 살펴봄.
이 시기에 과학의 제도화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음
첫째로 12-13세기의 그리스-아랍 문헌의 번역 사업,
이러한 번역작업이 없었다면 과학 혁명은 몇 세기 늦게 일어났을 것이고 과학이 하나의 분과로 발전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둘째로 13세기 중세 서유럽에서만 보였던 대학의 설립.
대학의 설립은 과학교육 및 연구의 제도적 안정성과 후원 체제를 확립함.
옥스퍼드, 파리, 볼로냐 지방에 처음 만들어진 대학들은 예술(art), 신학, 법학, 의학을 전공하기 위한 교육과정에 자연철학과 수학, 천문학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러한 교육과정은 대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똑같이 복제됨.
이는 과학 자체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함.
셋째로 신학이 과학과 대립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즉, 신학자가 스스로 자연철학을 연구하게 된 것.
분명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이교도이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이교도의 사상을 종교적 신앙에 반하는 위험한 것으로 지목할 수도 있었음.
그랜트는 이슬람에서 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대립하여 정밀과학이 제도화되지 못했으며 서유럽에서는 그러한 대립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밀과학이 제도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주장함.
기독교는 이슬람교보다 느리고 평화롭게 유럽에 퍼졌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교도의 사상과 잘 융화될 수 있었다는 것.
중세 신학자들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신학을 발전시키려고 함.
그랜트는 세 가지 요인, 즉 번역, 대학, 그리고 신학과 과학의 유대야말로 서유럽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밑거름이라 주장함.
이러한 관점에서 근대 과학의 기원을 중세에서 찾음.
번역된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한 대학에서의 자연철학 교육은 계속 확산되었고, 신학자-자연철학자들은 고대의 과학을 보존, 추가, 수정하여 새로운 논문 발표하고 이에 대하여 토론하며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는 것.
특히 정밀과학은 학위를 받기 위한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었고, 신학자-자연철학자들이 연구한 자연철학은 ‘과학적 방법’이 형성되는데 일조함.
대부분의 자연철학적 업적은 철학적인 것이었는데, 뷔리당과 같은 중세 말의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의 단순성과 공통된 법칙의 존재에 대한 가정, 그리고 반-사실문의 활용 등 개념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이는 곧 과학적 방법론의 형성에도 영향을 줌.
이 당시 포텐셜, 실재, 물질, 성질, 사건, 원인, 유추, 형태, 본질, 종, 관계, 양, 질, 장소, 진공, 무한 등 여러 이후 과학적 논쟁의 근간이 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들이 중세의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중세 과학의 기여.
그랜트는 심지어 중세 말의 자연철학자들이 질의 변화를 수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과학혁명기의 특징 중 하나인 수학과 자연철학의 융합이 중세 말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함.
그랜트는 과학이 서유럽에서만 제도화되고 이후 과학 혁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중세의 사건들에서 찾음.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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