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tvN <코미디 빅리그>를 보려고 거실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연합뉴스TV를 보고 계셨다. 존엄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임종 체험을 한다면서 삼베로 된 상복 같은 것을 입고 관 안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 봐라. 사람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겠다고 저런 걸 한다.”
어머니 말씀은,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임종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이나 만들어서 운영하고 돈을 받아먹는다는 뜻이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임종 체험 같은 것을 하느냐,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삶의 중요성을 알려고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따지고 보면, 임종 체험이라는 건 임종 체험조차 아니다. 임종 체험이 말만 임종 체험이지 실상은 상복 체험이나 입관 체험에 불과하다. 죽은 상태를 경험해야지 상복 입은 체험이나 관에 들어간 체험이나 해놓고 임종 체험이라고 하면 되나? 그딴 것을 하면 죽음에 대한 이해가 쥐뿔이나 늘어나는가?
내가 지금까지 한 것 중에서 임종 체험과 가장 가까운 체험은 전신마취 체험일 것이다. 그런데 전신마취를 하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신마취를 했는데도 기억이 나면 그건 더 큰 일이다. 하여간 수술 받느라 전신마취를 두 번 받아보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세라고 해서 하나, 둘, 셋까지 세다가 기억이 없고 마취에서 깨어나니 병실이었다. 그때 든 생각은 수술받다가 잘못되어서 죽었으면 안 깨어났겠구나 싶었고, 그것이 다였다. 삶의 의미라든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코미디를 보아야 하는데 어머니께서 존엄사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하셔서 나도 같이 보았다. 그 방송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 중에는 자신이 남은 뒤 남은 사람들에게 남길 말을 비석에 쓴다면 무슨 말을 쓸지 생각해보는 것이 있었다. 방송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비석에 쓸 말을 고민하자 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고 또 한 말씀 하셨다. “요즈음은 죽으면 자식들이 화장해서 뿌리는데 무슨 놈의 비석이냐.” 그 프로그램 중에 자신이 치매에 걸릴 때를 대비해서 자식에게 남길 말을 적는 것도 있었고 아까 그 아주머니가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카드 같은 데 적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즈음 누가 집에서 치매 노인을 모시냐. 다 요양병원에 갖다 맡기는데 나이 먹고 저렇게 속없는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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