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 베이컨 지음, 『신기관』, 진석용 옮김 (한길사, 2016). ]
[1]
- 인간은 자연의 사용자 및 자연의 해석자로서 자연의 질서에 대해 실제로 관찰하고 고찰한 것만큼 무엇인가를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음.
- 그 이상의 것은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음.
[2]
- 맨손이나 방치된 지성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
- 도구를 쓰면 손의 활동이 증진되거나 규제되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도구를 사용하면 지성이 촉진되거나 보호됨.
[3]
-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힘임.
-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어떤 효과도 낼 수 없음.
• 자연은 오직 복종함으로써만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
• 자연에 대한 고찰에서 원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작업에서는 규칙의 역할을 함.
[6]
- 지금까지 실행된 적이 없던 일이,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서 실행될 수는 없음.
[12]
- 현재의 논리학은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통속적인 개념에 근거를 두는) 오류들을 강화함.
- 따라서 이로움은 없고 해롭기만 함.
[15]
- 현재로서는 논리학과 자연학에 견실한 개념이 없음.
• 실체, 성질, 능동, 수동, 현존 등은 명확한 개념이 아님.
• 생성과 소멸, 원소, 질료와 형상 등의 개념들도 마찬가지임.
- 이 모든 개념들이 공상의 산물이며, 명확히 규정된 것이 아님.
[18]
- 지금까지의 학문에서 발견된 것들은 대체로 통속적인 개념에 따른 것임.
- 자연의 심오한 비밀을 알아내려면 더 확실하고 견고한 방법으로 사물로부터 개념과 공리를 이끌어내야 함.
[19]
-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음.
- 방법(1):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명제에 도달한 다음, 그것을 제1원리 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삼아 중간 수준의 공리를 이끌어 내거나 발견하는 것
•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임.
- 방법(2):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점진적으로 상승한 다음, 궁극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명제까지 도달하는 방법
• 이는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지만 진정한 과학적 방법임.
[22]
-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방법은 어느 쪽이든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해 가장 일반적인 것에 도달하지만 둘의 차이는 엄청나게 큼.
• 방법(1)은 경험의 한계와 개별적인 것들을 피상적으로 건드리는 데 불과함.
• 방법(2)는 올바른 순서를 따라 꾸준히 그 본질까지 도달함.
• 방법(1)은 처음부터 추상적이고 쓸모없는 일반적 명제를 설정함.
• 방법(2)는 자연에서 실제로 가장 일반적인 원칙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씩 꾸준히 올라감.
[26]
- 설명의 편의를 위해 다음과 같이 부를 것을 제안함.
•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추론을 ‘자연에 대한 예단’
• 사물로부터 적절하게 추론된 것을 ‘자연에 대한 해석’
[30]
- 모든 시대의 모든 지식인의 힘을 합해도 예단으로는 학문의 진보가 불가능함.
[31]
- 낡은 것에 새 것을 더하거나 잇대어 깁는 것으로는 학문이 진보할 수 없음.
•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지점에서 뱅뱅 돌거나, 대수롭지 않은 진보에 그칠 뿐임.
- 혁신은 근본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함.
[32]
- 고대의 창시자들의 명예가 손상될 것은 조금도 없음.
• 우리의 관심사는 그들의 능력을 우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비교하는 것
• 우리가 하는 일은 재판관이 아니라 안내자로서의 역할
[37]
- 우리의 방법은 출발점에서는 회의론자들의 방법과 어느 정도 일치하지만 결론에서는 크게 다르고 완전히 반대됨.
- 회의론자들은 절대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단정하며, 우리도 현재의 방법으로서는 극히 조금밖에 알 수 없다고 주장함.
• 회의론자들은 감각과 지성의 권위를 완전히 부정하는 길로 나아가지만, 우리는 감각과 지성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 도와주자는 것.
[38]
- 인간의 지성을 고질적으로 사로잡는 우상과 그릇된 관념들은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리도 얻을 수 없게 만듦.
-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러한 우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만 학문을 혁신할 수 있음.
[39]
-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는 우상은 네 종류
• 우상(1): 종족의 우상(Idola Tribus)
• 우상(2):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 우상(3): 시장의 우상(Idola Fori)
• 우상(4):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
[40]
- 이러한 우상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참된 귀납법으로 개념과 공리를 형성하는 것.
- 그러나 그러한 우상들을 찾아내는 것만 해도 대단히 유익함.
• 소피스트의 궤변을 연구하면 논리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우상에 대한 올바른 연구 역시 자연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됨.
[41]
- ‘종족의 우상’은 인간성 그 자체에.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뿌리박힌 것.
• 예) ‘인간의 감각이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지만, 인간의 모든 지각은 감각이든 정신이든 우주가 아니라 인간 자신을 준거로 삼기 쉽다는 것을 보여줌.
• 표면이 고르지 못한 거울이 사물의 그 본모습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나오는 반사광선을 왜곡하고 굴절시키는 것과 같음.
[42]
-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가지는 우상.
• 각 개인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오류와는 달리 자연의 빛을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동굴 같은 것을 제 나름대로 가짐.
• 예) 개인 고유의 특수한 본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받은 교육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읽은 책이나 존경하고 찬양하는 사람의 권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첫 인상의 차이(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생겼는지, 아니면 선입관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생겼는지)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음.
•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변덕이 심하고, 동요하고, 우연에 좌우됨.
[43]
- ‘시장의 우상’은 인간 상호간의 의사소통과 모임에서 생기는 것
• 인간은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며, 그 언어는 일반인들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정해짐.
- 어떤 말이 잘못 만들어지면 지성은 실로 엄청난 방해를 받음.
• 어떤 경우에는 학자들이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새로운 정의나 설명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태를 개선하지는 못함.
• 언어는 여전히 지성에 폭력을 가하고, 모든 것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인간으로 하여금 공허한 논쟁이나 일삼게 하고, 수많은 오류를 범하게 함.
[44]
- ‘극장의 우상’은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생기게 된 우상
•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거나 고안된 철학체계들은, 무대에서 환상적이고 연극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각본과 같은 것임.
• 각본은 수없이 만들어져 상연되고 있는데, 오류의 종류는 전혀 다르지만 그 원인은 대체로 같음.
• 철학 이외에 구태의연한 관습과 경솔함과 태만이 만성화된 여러 분야의 많은 요소들과 공리들도 마찬가지임.
[62]
- 사람들은 대체로 적은 것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이끌어내거나 많은 것에서 극히 적은 것만 이끌어내어 그들 철학의 토대를 세움.
• 이 때문에, 그들의 철학에서 실험과 자연사의 기초가 박약하며, 불충분한 소수의 사례만으로 판단을 내림.
- 부류(1): 궤변파(또는 합리파) 철학자
•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들을 그것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주의 깊게 보거나 고찰해보지도 않은 채 그 밖의 모든 것을 사색이나 정신의 활동으로 해결하려는 철학자
- 부류(2): 경험파 철학자
• 몇 번의 실험을 주의 깊게 열심히 해본 다음, 대담하게도 그것을 근거로 철학의 체계를 수립하는데, 모든 것을 그들의 실험에 맞추려 드는 사람들
- 부류(3): 미신을 주장하는 철학자
• 신앙과 종교적 숭배심 때문에 신학과 전통을 끌어들이고 영혼에게서 학문을 구하려 드는 자들
[63]
-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류(1)의 가장 두드러진 예.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논리학으로 자연철학을 온통 망쳐놓음.
• 논리학의 범주로써 세계를 해석하여, 가장 고귀한 실체인 인간의 영혼을 유(類) 개념으로 파악함.
• 유 개념은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는 개념보다] 부차적 중요성을 지니는 것
• 물체가 차지하는 공간의 넓이와 관계되는 농후와 희박의 문제도 현실태와 잠재태라는 개념으로 다룸.
• 모든 물체는 자신의 고유한 운동이 있고 그 밖의 다른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외부의 작용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사물에 온갖 본성을 자기 멋대로 규정함.
-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내적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그럴듯하고 멋진 대답이 되고 명제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을지 고심함.
• 그리스의 다른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은 자연학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는 논리학적 용어 외에는 다른 것이 없음.
[64]
- 경험파의 철학은 궤변파보다도 더욱 조잡하고 기괴한 학설을 만들어냄.
• 경험파는 통속적인 개념의 빛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한정된 실험의 어둠 속에서 이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임.
• 따라서 이런 부류의 철학은 날마다 그와 같은 실험에 종사하여 상상력이 완전히 고갈된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가 될 뿐임.
• 예) 연금술사들과 그들의 학설
- 현재로서는 길버트의 철학 외에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움.
- 이 학파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면 안 됨.
• 실험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이해가 부족하거나 성급하여 [소수의 실험에서] 곧바로 일반적인 명제나 원칙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
[65]
- 미신과 신학이 뒤섞여서 철학이 타락함.
• 인간의 지성은 통속적인 개념의 영향을 받는 만큼이나 공상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
• 논쟁적이고 궤변적인 철학이 인간의 지성을 함정에 빠뜨린다면, 공상적이고 과장적인 이른바 시적인 철학은 지성의 비위를 맞추려고 함.
- 사례
• 피타고라스의 경우는 조잡하고 과장된 미신과 결부되어서 경계하기 쉬움.
• 플라톤과 그 학파는 학설이 정교하여 훨씬 더 위험함.
• 질료로부터 분리한 형상, 중간인을 생략한 채 목적인과 제1원인 등을 늘어놓는 학설
- 오류의 신격화만큼 큰 해악은 없으며, 그런 헛된 숭배가 시작되면 인간의 지성이 무너짐.
- 그런데 오늘날에도 헛된 숭배에 빠져들어 <창세기>나 <욥기>와 같은 성경 구절에 기대어 자연철학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이 있음.
• 이것은 “산 자 가운데서 죽은 자를 찾는” 어리석은 일임.
- 신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이처럼 어리석게 결합되면 공상적인 철학이나 이단적인 종교가 출현하므로, 그와 같은 헛된 숭배를 규제해야 함.
[70]
- 경험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수한 논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진 실험의 범위 안에서만 그러함.
• 어떤 실험에서 얻은 경험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례까지 무분별하게 적용할 경우에는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임.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놀이하듯 실험을 함.
• 이미 결과가 알려진 실험을 약간 변형해보고, 소득이 없으면 금방 포기함.
• 간혹 진지하고 부지런히 실험하는 경우에도 한 가지 일만 깊게 파고듦.
• 예) 길버트 라일의 자석 실험, 연금술사들이 금으로 실험하는 것 등.
• 이러한 실험들은 하찮고 미숙한 것들임.
- 어떤 물체의 본성도 그 물체 하나만 연구해서는 알 수 없으며, 탐구는 광범위하게 확대해어 해야 함.
-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이나 이론을 수립하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응용부터 하려고 함.
• 당장의 이익과 성과를 얻으려고 하거나,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익한 일이 아님을 보증 받으려고 하거나, 그 업적으로 자기 이름을 빛내려고 하기 때문임.
• 그러나 시기상조의 응용에 나서는 것은 아탈란타가 황금사과를 줍느라고 한 눈을 팔다가 승리를 코앞에서 놓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
- 진정한 실험의 길은 하느님의 지혜와 그 정한 순서를 본받는 것.
•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고 그 날에는 하루 종일 그 일만 하셨고 다른 어떤 물질도 만들지 않으셨음.
• 그와 같이 우리도 무슨 실험을 하든지 원인과 진실된 공리를 찾아내는데 주력해야 하고, 이익을 가져오는 실험보다는 빛을 가져오는 계명 실험에 치중해야 함.
- 올바른 방법으로 탐구되고 수립된 공리는 풍부한 성과를 줄줄이 가져옴.
[77]
-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
•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일반적 동의를 얻었다. 그의 철학이 생긴 이후 그 이전의 철학은 전부 학파가 끊어졌고 그 이후에는 더 나은 철학이 생기지 않았으니, 이렇게 당대나 후대를 통틀어 지지를 얻은 것은 그의 철학이 우수하고 기초가 튼튼했기 때문이 아닌가?”
- 베이컨의 반박(1):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나온 후에 그 이전의 철학은 모두 학파가 끊어졌다는 말은 거짓말임.
• 옛날 철학자들의 저작은 키케로 시대와 그 다음 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었음.
• 그러나 야만인들이 로마 제국에 침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철학만이 그 험한 시대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게 됨.
• 이는 난파를 당했을 때 그들의 철학이 가볍고 견고하지 못한 판자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임.
- 베이컨의 반박(2):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만인의 동의를 얻었다는 것도 거짓말임.
• 진정한 동의는 사실을 잘 조사해본 다음에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임.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동의한 사람들 대다수는 선입관이나 다른 사람의 권위를 추종한 것이므로, 이는 동의라기보다는 대세에 휩쓸려 따라다닌 것임.
• 그 동의가 실제로 폭넓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고부동한 권위의 증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반대의 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임.
• 신학이나 정치처럼 투표에 의한 결정이 인정되어 있는 영역이라면 모르겠지만, 지적인 문제에서는 만장일치로 내리는 결론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음.
• 대중의 찬성은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통속적인 개념의 끈으로 지성을 묶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임.
• 포키몬: “대중이 찬성하고 갈채를 보내면, 자기에게 오류나 과실이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도덕의 영역뿐만 아니라 지식의 영역에 적용해도 좋을 것임.
[96]
- 순수 자연철학은 아직 나오지 않았음.
- 지금 있는 자연철학은 온통 불순물로 오염되어 있음.
•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자연철학은 논리학에 오염되어 있고, 플라톤 학파의 자연철학은 자연신학에 오염되어 있음.
• 신-플라톤학파, 즉 프로클로스 등의 자연철학은 수학에 오염되어 있음. 수학은 자연철학을 생성하거나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철학을 완성시킬 때 쓰는 것임.
- 그러므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자연철학이 등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도 좋다.
[100]
-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실험을 탐색하고 획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시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과 순서와 과정으로 진행해야 함.
- 모호하고 변덕스러운 경험은 어둠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인간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깜짝 놀라게 할 뿐임.
- 경험이 일정한 법칙을 따라 바른 순서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면 학문이 한층 더 진보할 것임.
[102]
- 개별 사례들은 수없이 많고 사방에 흩어져 있으므로 지성이 혼란을 일으키기 쉬움.
- 이런 상황에서는 탐구 주제에 관한 개별 사례들을 적절한 순서로 일목요연하게 분류 정리 정돈해서, 살아 있는 ‘발견표’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함.
• 정신은 이러한 발견표가 제공하는 잘 정리된 자료의 도움을 받아야 함.
[103]
- 그러나 이와 같은 수많은 개별 사례들이 일목요연하게 수집・정리된 상태로 눈앞에 놓더라도 곧바로 새로운 개별적인 사례나 성과를 탐구하거나 발견하려고 하면 안 됨.
- 물론 한 개인이 일목요연하게 수집・정리된 실험결과들을 놓고, 이른바 ‘학문적 경험’으로 판단을 내릴 경우에도 기술의 이전이 생길 수 있고 인간과 사회에 이로운 여러 가지 새로운 실험이 발견될 수 있으나, 그와 같은 학문적 경험으로는 대단한 발견을 기대할 수는 없음.
- 우리가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발견은 개별 사례들로부터 일정한 방법과 규칙에 의해 도출된 공리의 새로운 빛임.
• 이 공리가 나오면 곧 이 공리에 의해 새로운 개별 사례들이 차례로 밝혀지게 됨.
- 우리가 가는 길은 평지가 아니라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어서 공리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성과에 이르는 것.
[105]
- 일반적 공리를 수립할 때는 지금까지 사용한 것과는 전혀 다른 형식인 귀납법으로 해야 함.
- 제1원리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모든 공리의 증명과 발견에 이 귀납법을 사용해야 함.
- 베이컨이 말하는 귀납법은 단순나열의 유치한 귀납법이 아님.
- 유치한 귀납법은, 보통 소수의 사례, 그것도 손쉽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반대 사례가 나타나면 결론이 당장 무너지게 되는 위험성이 있음.
- 학문과 기술의 발견 및 증명에 유용한 귀납법은, 적절한 배제와 제외에 의해 자연을 분해한 다음, 부정적 사례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나서 긍정적 사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
• 이러한 귀납법은 플라톤이 [정의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면서 잠깐 시도한 것을 빼면 지금까지 아무도 사용하거나 시도한 적이 없음.
- 참된 귀납법 또는 진정한 증명 방법을 도입하려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야 하고, 사람들이 삼단논법에 쏟았던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
[106]
- 귀납법에 의해 일반적 공리를 수립할 때, 그 일반적 공리가 적절한 것인지, 아니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된 것인지를 잘 조사해 보아야 함.
일반적 공리가 적절한 것 = 귀납적 추론의 근거가 된 개별적 사례들을 제대로 계산해서 나온 것
- 후자일 경우, 그 일반적 공리가 더 넓은 범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새로운 개별적인 사례들을 일종의 보증으로 제시해야 함.
이미 알려진 사실들의 증명에만 집착한다든가, 자연의 실체는 놓아두고 엉뚱하게 그림자만 따라다니거나, 속 빈 형상만을 좇아서는 안 되기 때문임.
-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희망의 빛이 우리들을 비출 것임.
[107]
자연철학은 확대되어야 하고 개별 학문들은 자연철학을 모태로 삼아야 함.
개별 학문들이 모태로부터 잘려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해야 함.
그러지 않으면 어떠한 진보의 희망도 품을 수 없음.
[108]
또 다른 희망의 근거들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많은 유용한 발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한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음.
누군가가 나서서 전심전력으로, 그것도 일정한 방법과 순서를 따라 서두르지 않고 중단 없이 연구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발견이 이루어질 것임.
그러므로 더 이상 우연이나 동물적 본능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근면과 새로운 방법과 그 적용을 발견의 밑천으로 삼는다면, 더 크고, 더 좋고, 더 많은 발견이 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것임.
[109]
우리가 잘 아는 발견들 중 어떤 것은 그것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거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음. 이것도 우리가 희망을 품어도 좋은 또 하나의 근거가 됨.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예측할 때는 이전에 익히 알고 있던 것에 비추어 거기에다 이런 저런 공상을 보태어 추측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완전히 그릇된 추론임.
왜냐하면 자연의 원천에서 솟아난 것 가운데는 정해진 수로를 따르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임.
대포가 발명되기 전에, 누군가 대포의 위력에 대해 ‘아주 먼 거리에서도 성벽이나 견고한 보루까지 뒤흔들고 때려 부수는 발명품’이라고 설명했다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통적인 공성무기인] 발석차나 당차에 더 무거운 돌을 싣거나 바퀴를 더 많이 달거나 발사력을 더 강하게 해서 돌진력이나 파괴력을 증대시킨 무기쯤으로 생각했을 것임.
갑자기 격렬하게 팽창하고 폭발해 불의 폭풍을 일으키는 그런 무기는 상상도 못했을 것임.
명주실이 발견되기 전에 누군가 ‘아마나 양모보다도 훨씬 결이 고우면서도 훨씬 더 질기고, 게다가 아름답고 부드러운 새로운 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홈패션물을 만들면 기가 막히게 좋다’고 설명했다면, 사람들은 금방 신기한 식물섬유나 결이 고운 동물털이나 새의 깃털이나 솜털 같은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것임.
작은 벌레가 자아내는, 그것도 해마다 계속 자아내어 써도 써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임.
나침반은 또 어떤가?
나침반이 발견되기 전에 누군가 ‘동서남북의 4방위와 32방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구가 발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사람들은 천문학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구를 한층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든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임.
천체의 운동과 같은 운동을 하면서도 천체가 아닌 돌이나 금속이 있을 줄은 누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알지 못했던 이러한 일들이 드디어 발견되긴 했지만, 철학이나 이성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얻은 것들이었음.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이 모든 발명품들은 예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종류가 다른 것들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지식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
자연의 품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유조차 불가능한 기상천외한 보물들이 인간에게 실용될 날을 기다리며 수없이 묻혀 있음.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해온 발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실용될 것이 틀림없거니와, 우리가 말한 방법대로 탐구해 나간다면, 갑자기, 그리고 한꺼번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을 기대할 수 있음.
[110]
훌륭한 발견이 코앞에 있는데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함.
화약이나 명주실, 나침반, 설탕, 종이 같은 것들의 발견은 사물과 자연의 특성을 알아내어 실용화한 것
인쇄술의 경우에는 사물과 자연의 특성에 대한 힘든 연구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얻어낸 산뜻한 발명임.
이 아름다운 발명이 그토록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자형을 배열하는 것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야 물론 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자형은 한 번 배열해 놓으면 몇 번이고 인쇄할 수 있는 반면, 손으로 쓴 문자는 단 한 권의 필사본밖에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임.
잉크를 흘러넘치지 않도록 빽빽하게 만들어 자형에 바르면 위에서 종이를 눌러 문자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임.
인간의 정신은 이와 같은 발견의 도정에서 자신 없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기까지 하는 등 침착성을 잃고 안절부절 못하는 일이 종종 있음.
어떤 발견이든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다가, 막상 발견이 이루어지고 나면 이번에는 그런 간단한 일을 모르고 지내온 인간의 미련함에 대해 고개를 흔듦.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근거가 된다.
새로운 작업방식을 연구하는 것으로 혹은 이미 알려진 작업방식을 학문적 경험이라고 부른 방법으로 이전(移轉), 비교, 응용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발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
[129]
- 생각해보아야 할 점들
- 위대한 발견을 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탁월한 행동임.
• 고대인들은 새로운 사물을 발견한 사람들을 신격화하여 영예를 드높였지만, 국사에 공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웅의 영예를 부여하는 데 그침.
• 고대인들의 판단이 옳았음.
• 발견의 혜택은 인류 전체에게 미치지만 정치적인 혜택은 특정한 장소에 한정됨.
• 발견의 혜택은 영원하지만 정치적인 혜택은 2-3대에 그침.
- 발견은 새로운 창조임
- 유럽의 선진적인 지역의 사람들과 뉴 인디아의 미개한 지역의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생활수준의 차이가 엄청나서 ‘사람이 사람에게 신이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임.
- 발명된 것의 힘과 효능과 결과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음.
• 고대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던 3대 발명, 즉 인쇄술, 화약, 나침반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음.
• 인쇄술은 학문에서, 화약은 전쟁에서, 나침반은 항해에서 세상을 완전히 바꾸었음.
• 또한 그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이 세 가지 발명보다 더 큰 힘과 영향을 미친 것은 없었음.
- 인간의 야망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
• 야망(1): 자기 세력을 자기 나라 안에서 확대하려는 야망. 하등의 천박한 야망
• 야망(2): 자기 나라의 권력과 지배권을 인류 전체에 확대하려는 야망. 이는 품위는 조금 있지만 탐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야망.
• 야망(3): 인류 자체의 권력가 지배권을 우주 전체에 대해 수립하고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야망. 더 없이 건전하고 고귀한 야망
- 인류 전체에 혜택을 미치는 발견을 한 사람을 인간 이상의 위대한 존재로 여길 정도라면, 그러한 발견 자체를 수비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자는 그보다 존귀하게 섬겨야 함.
- 학문과 기술이 인간을 사악과 방종으로 이끌어 타락하게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말 것
• 그런 논법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재능, 용기, 힘, 아름다움, 부, 빛 등)이 다 마찬가지임.
[130]
- 이제 자연을 해석하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음.
- 베이컨은 여기에서 제시한 지침이 매우 유용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필요불가결하고 완전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음.
-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자연지와 경험지를 앞에 놓고 두 가지만 주의하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정신 본래의 힘만으로도 우리가 설명한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에 도달할 수 있음.
• 주의할 것(1):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
• 주의할 것(2): 적당한 시기가 될 때까지 성급한 일반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
• 왜냐하면 정신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정신이 올바르고 성실하게 활동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자연에 대한 해석이 되기 때문임.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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