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6

황순원 문학에 대한 양자론적 해석



내가 문학을 잘 몰라서 문학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기는 하지만, 문학 분야의 논문 중 일부는 연구로써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 정도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 나간다는 논문들이 종종 있다.

황순원의 소설 중에 「신(神)들의 주사위」라는 작품이 있다. 황순원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염두에 두었나 싶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데다 소설에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신(神)들의 주사위」라는 작품을 두고 양자역학에 기반하여 분석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소리 말고는 나올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논문이 실제로 있다. 둘이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황순원 소설을 양자론적으로 해석”했다고 하는 그 논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다음 건실하게 사는 등장인물은 거시 세계의 인과론적 논리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정신 놓고 막 사는 등장인물은 미시 세계의 양자론적 논리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 논문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술망나니들이 양자론적 논리를 따르고 있었다니.

높은 건물만 보면 남근 타령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무 데나 양자역학 붙이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은 높은 건물을 보고 비싼 땅값이나 건축 공법이나 도시 운용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남근을 떠올리는 건가? 빌딩이 남근이면 지하 건물은 여근인가? 그러면 초가집 짓고 조용히 사는 건 뭔가? 심영인가?

내가 문학 작품을 거의 안 읽기 때문에 문학 평론은 아예 안 읽어서 평론 쪽 사정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논문 전체가 근거도 없고 분석도 없이 자유연상법만으로 뒤범벅을 해도 KCI 등재지에 실리는 판에 평론만은 예외일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문학 평론가 선발 대회 같은 데 과학으로 떡칠한 문학 평론을 낸 다음에 사실 그게 개소리였음을 설명하는 글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과학 전쟁도 있었는데 문학 전쟁이 없으란 법도 없다.

* 뱀발

높은 건물만 보고 남근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고 심지어 신문 칼럼에도 해당 내용이 실린 바 있다.

다음으로 나는 철골구조 타워형으로 66층이나 치솟아 올라 주변 아파트들을 눌러버릴 기세로 서 있는 타워 팰리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적 가치가 얼마나 강고한가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첫눈에 불끈 솟은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그것은 생김새부터가 권위적이고 오만하며 끝모르는 지배욕의 구현처럼 보인다. 그 거대한 물신의 성전에는 극도의 효율성 추구, 강자 지향, 패권적 배타성 등 남성적 가치들이 지고의 선으로 봉안돼 있다. 그래서 나는 타워 팰리스가 ‘타워 페니스’로 보인다.(김신명숙, 「‘타워팰리스’ 그들만의 궁전」)

* 링크: [한겨레] ‘타워팰리스’ 그들만의 궁전 / 김신명숙

( http://m.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38811.html )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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