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회에서 김어준은 이렇게 말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해야겠다, 이런 범죄를 엄단해야겠다’, 이런 건 정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이냐? [...]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 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간다는 겁니다. 지금 나오는 뉴스가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예언입니다, 예언. 누군가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타겟은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입니다.”
김어준의 말을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토요일에 공개된 내용이니까 주말에 화제가 되고 김어준이 뒤지게 욕먹은 다음 월요일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해명하고 그럭저럭 지나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왜 김어준은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공작을 조심해야 한다고만 말하다가 말을 흐렸을까. 공작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다 말면 진보 인사가 가해자인 경우는 덮고 가자는 것이냐고 욕먹을 게 뻔히 보이는데 김어준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민주당에서 가해자가 나와도 가해자가 나올 때마다 족치고 하던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성 범죄자를 족치는데 진보적 지지층이 왜 분열되는가? 뉴스를 보고서야 나는 김어준이 왜 그랬는지 알았다. 안희정 때문이었다.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지만 아무래도 김어준은 안희정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희정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보도에 나도 놀랐다. 충격적인 일이고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다. 그런데 범죄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어떤 ‘대비’를 해야 했어야 했는가? 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뿐이다. 진보적 지지층이 분열된다면, 유력 대선 주자가 성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그 자체에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해자가 대선 주자라는 이유로 범죄 사실을 은폐하거나 가해자를 감싸려는 시도 때문에 분열될 것이다. 범죄자를 징계한다는 이유로 당을 비판하는 지지자나 당원은 그 당을 떠나는 것이 낫다.
김어준은 공작에 대비해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가해자로 밝혀지더라도 옹호하거나 두둔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야 했다. 대선 주자 하나 날아간다고 해서 당이 망하거나 정권이 실패하지 않는다. 미온적인 대처를 할 때 타격을 입는 것이다. 김어준이 안희정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일 알고 있었다면 어떤 처리 방식을 염두에 두었을까? 분명히 미온적인 대처였을 것이다.
김어준은 2012년에 김용민 때문에 민주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박근혜 심판 선거를 언론이 김용민 심판 선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는 보수 언론들이 정의로웠으며,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악재를 키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어준은 자기편 이야기를 할 때는 신기할 정도로 순진한 소리를 한다. 김용민이 사과하고 후보 사퇴하면 수습될 일을 키우고 키워서 선거를 망쳤다. 엊그제까지 호탕하게 욕하던 욕쟁이가 하루아침에 찔찔 우는 표정으로 선거 운동을 하러 다니는데 선거가 안 망할 리가 있나.
김용민 사태 때 김어준의 대처라고는 새누리당이 더 막말하고 더 성희롱하는 당이라고 선전하는 것뿐이었다. 잘못이 드러날 때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부분을 책임지는 것밖에 없다. 저쪽이 더 나쁘다고 해봐야 일은 수습되지 않는다. 공작에 대응한다면서 헛발질을 해서 진흙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2012년 총선이다. 안희정의 일은 김용민의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다. 도대체 무슨 대비를 한단 말인가. 공작에 대비한다는 것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김어준의 말대로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가장 단순하고 올바른 해결책이 안 보이게 된다. 그래도 다행히도 민주당은 안희정을 곧 제명한다고 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2012년 민주당하고는 다른 모양이다.
* 링크: [JTBC] 인터뷰 - “안희정 지사 성폭력” 폭로…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 (2018.03.05)
( www.youtube.com/watch?v=o7TO1Pv_t2s )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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