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이 수업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학문의 균형이다. 한 쪽으로 편중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과라고 해서 과학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고 이공계라고 해서 철학 등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인데, 후자보다 전자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지도교수님 수업에서는 첫 시간에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현재 전공, 관심 분야, 학문적 배경(학부 전공 등)을 밝히면 선생님은 그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하신다. 이공계 학부 출신에게는 “자네는 무슨 무슨 학문을 하니 무슨 무슨 분야와 관련이 있겠구만”이라고 하시고 인문대 학부 출신에게는 학문의 균형을 강조하신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지도교수님 대학원 수업에서는 인문대 학부 출신이 전체 수강생의 1/3 정도였고 마침 앉은 자리도 이공계 출신들 사이 사이에 앉아서 그 당시 선생님은 학문의 균형을 가볍게 언급하고 다음 학생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약간 달랐다. 인문대 학부 출신들이 2/3 정도 되었고 게다가 옆자리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고 선생님이 학문의 균형을 강조하고 그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고 선생님이 또 학문의 균형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소개를 진행할수록 학문의 균형을 점점 강하게 강조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점층법이 이런 건가 싶었다. 물론 중간에 과열을 막는 학생도 있었다. “저는 학부 때 물리교육과를 다녔습니다.”, “아, 반갑구만.”
어떤 학생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기도 했다. “저는 유감스럽게도 학부 때 과학을 하지 못하고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손을 저으며 “아, 그렇게 생각할 거 없네.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이셨다. “그건 구조의 문제이지.”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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