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ward Grant (2007), A History of Natural Philosophy: From the Ancient World to the Nineteenth Centur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
1. Neoplatonism and Its Approach to Aristotle
2. Philoponus and Simplicius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철학을 형이상학과 수학 아래에 있는 신학적 지식의 분과로서 정의함으로써 자연 철학의 범위를 제한했다. 자연 철학은 변화하고 운동하는 물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써 우주의 모든 물리적 대상을 포함하며 따라서 약학과 연금술을 포함하는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랜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과 동일시된 확장된 작업이 약학과 연금술을 포함하지 못했으며 이러한 학문들은 자연 철학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본다.
1. Neoplatonism and Its Approach to 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철학가 고대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첫 번째 주석자는 누구인지,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그의 저작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불가사의이며 다만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Andronicus of Rhodes)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편집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서기 1세기에 <범주론>에 주석이 달렸다는 증거가 있으나 그러한 주석 중 어느 것도 전승되지 않으며, 전승되는 주석은 서기 2세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전승에 관한 문제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대한 주석이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전통이 형성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자연 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은 <자연학>(Physics), <천체에 관하여>(On the Heavens), <기상학>(Meteorology) <영혼론>(On the Soul), <자연학 소론집>(Parva Naturalia) 등이다. 생물학 저작들은 자연 철학에 속했으며, <형이상학>은 자연 철학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자연 철학에 대한 주석에서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3세기-6세기는 새로운 수많은 종교들이 전통적인 종교들과 경쟁하던 시기였고 철학자들은 그러한 종교들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플로티누스가 만든 신-플라톤주의다. 신-플라톤주의의 강한 종교적 요소는 철학을 배우는 방식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들을 호의적으로 보았다. 플로니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이데아나 형상 개념을 무시했다고 불평했으나 고대 후기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보존되었다. 포르피리오스(Porphyry)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언어에 관한 것이며, 언어는 기본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세계의 대상들에 적용되는 것이지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이데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포르피리오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하나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이는 후기 고대의 신-플라톤주의 학파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이 플라톤 연구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종종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을 종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신-플라톤주의자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접근하는 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로 모순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심플리치오(Simplicio)는 그 둘이 본질적으로 일치하며 외견상의 차이는 신-플라톤주의의 해석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았다.
Richard Sorabji가 언급한 아리스토테렐스 저작에 관한 “주요한 그리스 주석가” 25명 중에서, 자연 철학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phrodisias), 테미스티우스(Themistius), 필로포누스(Johannes Philoponus), 심플리치오다. 알렉산더는 마지막 소요학파 철학자(peripatetic philosopher)라고 간주되었으나 한 세기도 더 지난 후의 테미스티우스도 소요학파 철학자로 간주되었다. 테미스티우스는 윤리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자연 철학에 대해서도 썼으며 아리스토텥레스의 저작을 문장 바꿔쓰기 하는 형태로 자신의 저작을 남겼다. 고대 후기의 가장 중요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이었다.
2. Philoponus and Simplicius
필로포누스는 기독교인으로서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비판했다. 필로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의 많은 부분에 반대하고 많은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공격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기독교인인 필로포누스는 세계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믿었으며, 세계를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로 나누고 지상을 구성하는 네 원소와 천상 세계를 구성하는 제5원소의 존재를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필로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5원소를 거부했다. 필로포누스는 물체가 공기에 의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임페투스에 의해 운동한다고 보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에서 운동 가능성을 부정한 반면 필로포누스는 그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거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항 매개가 없으면 물체는 무한한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필로포누스는 이에 반대하고 진공에서의 운동은 유한한 속도일 것이라고 했다. 공간을 “the boundary of the container”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필로포누스는 공간을 삼차원에서의 특정한 확장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확고한 옹호자인 심플리치오는 필로포누스를 넓은 범위에서 공격했다. 심플리치오는 <천구에 관하여>와 <자연학>에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필로포누스를 공격했다. 필로포누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대>(Against Aristotle)에서 필로포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한 중요한 부분을 보존하고 다른 것을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기가 무게를 가진다는 증거로 주머니에 공기를 넣으면 빈 주머니보다 더 무겁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심플리치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견해가 아리스토테렐스의 견해와 모순되지 않으며 프톨레마이오스를 따른다면 공기를 넣은 주머니가 더 가볍게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 심플리치오가 모두 같은 실험으로 다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이 당시 실험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한 필로포누스와 심플리치오의 주석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과 논변을 포함했다. 고대 후기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달린 주석은 특정 주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논의를 포함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으려는 시도였다.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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